당신의 철학은 안녕한가요
당신의 철학은 안녕한가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04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민지/SK에너지

사보편집기자

바야흐로 언론고시 시즌이 왔다. 토익, 한국어 능력, 상식, 논ㆍ작문 필기시험, 실무테스트, 면접… 길고 험난한 관문은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글을 계속 써오면서도 언론고시를 오르지 못할 나무, 그림의 떡으로 여겼던 것은, 일명 ‘지잡대’ 출신의 냉정한 자기분석일 수도, 그저 엄청난 전형에 청춘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던 게으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20대의 탈정치화’라는 유익할 것 없는 시대적 흐름에 언론학도라는 직무를 유기한 채 동참해버렸던 탓일 거다.
칼럼을 매주 쓰게 되고, 글감을 찾아 언시생 커뮤니티에 방문이 잦아지면서, 통 내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언론고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됐다.
고질적 갈등은 올해도 게시판을 잠식했다. ‘민주주의와 진보를 부르짖던 자들이 결국 높은 보수와 좁은 취업의 문 앞에서 소위 보수언론이라 일컫는 곳에 시험을 치러 가는 것, 변절이냐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타협이냐’의 문제. 한창 보수 언론사 앞에 촛불 시위대가 진을 치던 시절엔 날을 세운 비판들이 넘쳤었는데,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선 체념이 해결책이라는 의견이 더 눈에 띈다는 정도가 변화이다.
올해 한겨레의 1차 서류전형에서 174명이 걸러졌다. 토익과 한국어능력시험이라는 수치화된 잣대 속에 걸러져나간 이들이 분노했다. “이 신문도 어쩔 수 없는 사기업인가, 직무연관성 없는 스펙에 의한 줄 세우기를 비판하던 한겨레의 표리부동에 실망했다”며. 반면에 “스펙이 개인의 노력을 판가름하는 공정한 잣대가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국어 영어 실력이 기자라는 직업에 필요치 않은 능력은 아니지 않냐”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어떤 입장도 취할 수 없었다. 나는 조중동에도, 한겨레에도 입사할 일 따윈 없는 제3자였다.
나의 혼란은 2년 전의 강의실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조선일보 견학 및 기자 특강 후 ‘조선일보’라는 주제로 작문을 해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기행문 형식의 일색인 작문 과제들 틈에서 ‘나는 조선도 한겨레도 아니기에 신문을 읽지 않는, 철학과 신념이 없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나는 왜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나”라는 제목의 작문으로 교수님의 칭찬을 독차지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고 만 것이다.
축구전문잡지 기자 공채에 응시했다. 자신 있었던 축구관련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본인의 스펙이 타 지원자들에 비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죠, 스펙 쌓기 대신 대학 때 뭘 했나요”라는 질문은 받았다. 모든 질문에 침착하게 잘 답했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그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거다. 스펙을 쌓아 타협할 준비도, 묻지 않아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어필하며 대항할 용기도 없었던 내가 미워졌다. 여전히 내 철학은 부재중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