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한 움큼씩 빛을 뜯어낸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한 움큼씩 빛을 뜯어낸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23 14:36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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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한 움큼씩 빛을 뜯어낸다

치파야족은 잉카 쪽의 후예, 수천 년
양 끝에 돌을 매단 줄 하나로 새를 사냥한다

구름이 서리로 얼어붙는 안데스의 호숫가

숨죽여, 자세를 낮추고
새 떼가 가장 낮게 나는 순간을 노려
단번에 줄을 던진다

줄은 매번 땅바닥에 풀썩, 떨어진다

던지고 줍고 던지고 줍고……
저 허름한, 가없는 하늘의 별 따기

한순간,

팽팽히 회전하며 날아간 줄이
휘휘
새의 몸에 옭아매 지상으로 끄집어 내린다

달려들어 멱통이 끊어진 별에서
한 움큼씩 빛을 뜯어낸다, 배를 가르고 헤쳐 보면
태양과 맞먹은 산봉우리들이 끌려 나온다

고원의 노을빛 붉은 내장이 끓는 시간,
검게 언 궁기 뜨겁게 움켜쥔 하늘 사냥꾼들

(강신애, ‘치파야족의 새 잡기’)

오래전에 접한 시로 비교적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개성이 강한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잉카의 후손인 치파야족의 새 사냥 방법을 생각해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줄 양 끝에 돌을 달아서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에게 던져서 그 새를 잡겠다는 이야기…, 때에 따라서는 시의 소재보다는 민속이나 여행을 주제로 하는 글을 쓰기에 적당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시적 표현으로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이 돌팔매는 새가 날아가는 속도보다 빨라야 가능한 사냥 방법이다. 사냥술이 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새보다야 빨라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언제나 수확물은 넉넉하지 못할 것이고 수확물은 안데스 산꼭대기에 있는 별과 같이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냥으로 얻은 수확물은 문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세상살이는 어느 것 하나 녹녹할 수가 없다. 작품을 통해 시인은 문명인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있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작품 속에는 구체적으로 ‘여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 곳곳에는 그녀만의 특별한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전반적인 구도 역시 조화롭게 잘 짜여 있어서 한 단어 한 어절이라도 빠지게 되면 전체적인 균형이 심하게 불균형으로 무너질 수 있는 그야말로 짜임새가 훌륭한 시라 할 것이다. 치파야족에게 사냥은 유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 하늘로부터 일용의 양식을 하사받는 의식이다. 별 따기와 같은 존귀한 양식 사냥을 통해 먹고사는 치파야족이 정말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문명인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자세를 낮춰 허름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에 걸맞은 언어적인 기교를 동원하여 시어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화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다고 볼 때, 시인은 글로서 사람의 감성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강신애 시인의 ‘치파야족의 새 잡기’는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강신애 시인의 많은 작품은 이색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예리한 눈빛으로 높은 자리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소외된 계층의 입장에서 드러낸 시각으로 특별한 현실 상황을 포착하여 시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개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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