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雜草)
잡초(雜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8.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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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따뜻한 늦봄부터 폭염과 여름 장마를 보내고 가을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 조그마한 농장에서 잡초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물론 지금도 계속 중이다. 여름비를 맞은 잡초는 어떻게나 잘 자라는지 제초작업을 감당하기가 보통일이 아니다. 콩밭의 잡초는 하루 밤을 지새우고 나면 다시 무섭게 점령한다. 힘들게 제초작업을 해도 돌아서면 다시 잡초투성이가 된다. 잡초의 끈질긴 도전에 때로는 힘이 빠진다. 수많은 종류의 잡초들이 한편이 되어 나의 인내심과 끈기에 도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잡초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잡초의 사전적 의미는 경작지, 도로 빈터 등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 경작하거나 재배하는 풀 이외의 여러 가지 풀이라고 하였다.
‘야생초 편지’를 쓴 생태운동가 황대권 씨는 잡초를 야생초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은 35만 종이나 되는데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은 3천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물을 잡초로 무시해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흔히 잡초에 대해 아무런 쓸모없는 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귀찮고 성가신 존재나 아주 지긋지긋한 존재로 여겨왔다. 언뜻 보기에 별로 쓸모도 없어 보일뿐만 아니라 너무나 흔하며 아무리 뽑아내도 곧 또 다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잡초는 비가 내렸을 때 흙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 날이 가물어 땅이 말랐을 때에는 흙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아준다. 뿐만 아니라 잡초는 그 뿌리를 땅속 사방에 뻗고 있는데 이것이 땅속을 갈아주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잡초는 수많은 곤충이나 벌레 또는 동물들의 보금자리 피신처 역할도 하고 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의 먹이가 되어 주기도 한다. 만일 잡초가 없다면 빗물에 흙이 버티지 못하고 씻기 내려가기 쉽다. 또 이로 인해 산사태가 나기 쉬우며 산과 들 또는 논밭 등이 황폐화가 될 우려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생활이 불편해지고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기 쉽다. 잡초가 없어지면 수많은 곤충이나 벌레 또는 동물들의 보금자리나 피신처를 잃을 뿐만 아니라 생존마저 위협 받게 된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환경오염도 빨리 진행된다. 이런 점들만 보더라도 잡초는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모로 유익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잡초의 존재가치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 사람을 ‘잡초 같은 놈’이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쓸모가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쓸모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하찮은 잡초일지라도 늘 인간에게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쓸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찾아내어 이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주변에 몰아닥친 기업구조 조정으로 실직자가 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잡초처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쓸모, 즉 존재가치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 잡초론(雜草論)이 정치적으로 국민의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었다. 그는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정치인을 마땅히 제거 되어야 할 잡초에 비유했다. 잡초들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누구보다 발끈하였을 것이다. 인간에게 내몰리는 것도 서러운데 수준 낮은 정치인과 비교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물론 노 대통령이 말하려는‘잡초’라는 뜻은 환경생태학자들이 말하는 잡초와는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당시 국민이 환멸을 느끼는 저질 정치인을 지칭한 것으로 본다.
잡초는 보는 사람에 따라 악유(惡莠)가 될 수도 있고, 풋풋한 야생초가 되기도 하듯이 문제는 대통령의 통치관이다. 당시 청와대가 운동권 출신들로 자리 잡고 정부 정책에서 개혁과 비 개혁으로 나누는 일이 늘어날수록 이런 식의 발언은 편 가르기로 비춰졌다.
잡초인가 아닌가, 개혁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일이 쉽고 분명하다면 모르지만 요즘은 다양성의 시대이고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나라가 잘되고 사회가 화합될 수 있다면 잡초와의 동거도 고려 해볼 일이다. 그 잡초가 나라에 해롭지만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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