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추석
진주성-추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24 15:4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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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문화유산원장
심동섭/진주문화유산원장-추석

음력 팔월보름은 추석인데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예년과 같지 못하지만, 우리 조상들로부터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이라 했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미리 조상의 산소를 찾아 살피고 깨끗이 벌초를 한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는데 조상님에 바치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님께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전한다. 어떤 집안에는 민간신앙으로 성주대감·터줏대감·조상단지 같은 집안 신들을 모셔두고 이곳에도 햇곡식으로 추석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중추절 가배라고도 하며 1년 중 달이 가장 크고 밝아 한가위라고도 한다. 추석은 고대 농경 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 때 6부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보름경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심사하여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고려 시대에도 추석 명절은 지속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왕(先大王)에게 추석제를 지냈다고 한다. 추석이면 풍성한 민속놀이도 행해졌는데 씨름 줄다리기 그네뛰기 등을 즐긴다.

씨름은 강변 백사장에서 인근 마을의 힘깨나 쓰는 청년들이 다 모여 힘자랑을 하고, 그네뛰기는 단오에도 하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 추석이 되면 마을의 형들이 짚으로 큰 줄을 만들어 마을 뒤 소나무에 그네를 매어주면, 누나들 10여 명과 아낙들이 모여 색색 치맛자락 휘날리며 그네를 타고 즐기던 모습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라 형들은 씨름판으로 가고 우리 악동들만 남아 가끔 누나들을 졸라 함께 타 보기도 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추석 음식으로는 햅쌀로 술을 빚고 송편을 만들며 무나 호박 우거리를 넣은 시루떡도 만든다. 또 찹쌀가루를 쪄서 찧어 둥글고 납작하게 떡을 만들고 콩가루나 깨를 묻히면 고소한 깨가 따끔따끔 씹히며 단술과 함께 먹던 그 맛이 일품이었다. 옛날 농촌에는 추석이면 이틀 사흘을 쉬며 네 집, 내 집 없이 아무집이나 가서 술과 음식을 같이하며 이웃 간에 두터운 정이 있었다.

비록 지금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모두 살기가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이웃 간에 나눔과 베풂이 있었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며 사람 사는 맛이 나던 그 시절의 추석이 마냥 그립다. 추석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로 이어지고 있고, 그때보다는 경제적으로는 많이 부유하고 풍요를 누리면서도 어쩐지 이웃 간의 정은 옛날만 못한 것 같아 몹시 아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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