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공간을 사랑하라
아침을 열며-공간을 사랑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27 13: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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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놀이문화연구가
채영숙/놀이문화연구가-공간을 사랑하라

지인의 재능기부로 정리수납전문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정리수납전문가는 2015년 한국직업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신생 직업으로, 가정이나 사무실 등 한정된 공간에 비해 넘치는 물건들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정리 후에는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정리법을 알려주는 직업이란다. 가구나 수납용품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움직이는 동선이나 생활 방식을 고려해서 물건을 정돈하면 물품에 질서가 생겨서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고 한다.

매주 2시간씩 8주 동안 진행된 교육을 받는 동안 느낀 점은 나는 내게 주어진 공간을 공간답게 사용하지 않고 물건더미 속에서 살고 있었다. 엄청난 물건들이 공간의 주인인 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소유한 물건이 늘어나면서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어 버렸다. 삶의 흔적이 내가 소유한 물건에 그대로 묻어 있으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삶에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공간 변화를 주기로 했다. 내 공간의 변화는 2번의 이사에서부터이다. 한 번은 17년을 산 집을, 또 한 번은 19년을 재직한 연구실 공간을 정리하면서이다.

내 집을 방문했던 이사 전문 회사 담당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사모님, 짐이 참 많으시군요. 이사 전에 버릴 건 버려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두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기에 정말 많은 물건들이다. 잠자는 방만 침대 하나만 있을 뿐 나머지 3개의 방은 책방, 옷방으로 쓰고 있다. 책이 주인이고, 옷이 주인인 방들이다. 거기다 내 집에 한 번 들어온 물건이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매년 새 옷을 구입하고, 광고에 좋아 보이거나 신기한 물건은 주문을 한다. 지나다 가게에 진열된 예쁜 찻잔과 장식물이 눈에 띄면 구입한다. 때로는 먹거리를 사면 따라오는 플라스틱 용기들도 차곡차곡 부엌 공간을 차지한다. 여행지 기념품, 선물로 받은 건강식품은 왜 이리도 많은지. 못쓰게 되지 않으면 버리는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19년의 연구실 공간을 둘러보니 사방이 책이다. 대학 시절 보았던 전공 서적부터 내가 이고지고 다닌 물건들로 한 가득이다. 도서는 버리기 아까워 도서관에 연락을 하니, 10년 이내 출간된 도서 중학교 도서관에 없는 도서만 기증을 받는다고 한다. 귀중한 도서라 쌓아두고 있었는데, 모두 쓰레기로 버려진다니 아쉽다. 쓸 물건만 챙긴다고 챙겼는데 용달차 반 대 분량이나 나온다. 나머지는 쓸 사람이 있으면 쓰고, 모두 버려달라고 부탁하고는 19년의 시간을 보낸 연구실 열쇠를 반납했다.

공간 정리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니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나눔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다. 아나바다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은 주말 오픈마켓이 여기저기 열리더니 코로나로 사라지고, 요즘은 중고물품거래 사이트가 한 몫을 한다. 중고거래 앱에 등장하는 물건들을 보면서 미디어의 힘에 또 놀란다. 집안에 쓰지 않고 모아두기만 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십만 원의 물건에서 무료 나눔 물건까지.

나도 이사 와서 그동안 배운 것을 실천해 보려고 공간별로 용도를 정하고 쓸 문건만 남기고 안 쓰는 물건들을 아파트 카페에 무료 나눔을 했다.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은 돈 주고 사야 하는 물건들은 지나가던 주민들이 가져가라고 재활용물품 수거함이나 분리수거장에 내다 놓는다.

매주 내 공간을 둘러보고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보기로 한다. 소유한 물품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 과연 이 많은 것들이 지금 꼭 필요한 물품인지 따져 보자. 이제 수입원이 줄었으니 소비 패턴도 바꾸어야 한다. 충동구매와 대량으로 판매하는 상품 구매 습관도 고쳐야 한다. 먹거리는 필요한 만큼만 사고, 만약 사야 한다면 하나를 사면 하나를 내어놓는 습관도 가져보기로 한다. 사랑하는 내 공간을 공간답게 쓰기 위해서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소유 물품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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