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을 맞이하며
진주성-가을을 맞이하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06 14: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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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을 맞이하며

청명한 하늘이 들녘 한가득 따스하게 햇볕을 깔아놓고 누어버린 가을. 긴 장마에 유례없는 홍수에다 연이은 태풍의 광란에 부대낀 지난여름의 참담한 기억을 지우려고 가을은 바지런하게 황금빛으로 덧칠을 한다. 그래도 미쳐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달래려고 논길 들머리를 지키고 선 코스모스가 제 탓인 양 애가 타서 애처롭게 길어진 목이 더 가늘어져 청순함을 더한다.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감나무 이파리 사이사이에서 볼을 붉히는 감들이 몸서리치던 지난여름의 기억을 떨쳐내며 얼굴을 내민다.

언덕배기에서 웅크리고 숨을 죽였던 들국화도 화색이 돌았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산들거리는 바람결에 은행나무도 새롭게 단장을 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풀벌레가 울어서 깊어지는 가을, 고추잠자리의 날갯짓도 바빠졌다. 초목도 따사로운 햇볕을 한가득 품고 씨앗과 열매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고 미물도 제 몫을 다하려고 바지런을 떤다. 머잖아 찬 이슬 내리고 된서리 내리면 북풍한설이 몰아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란스럽거나 허둥거리지 않는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지극히 차분하다.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단장에 최선을 다하며 전부를 바친다. 순리도 거스르지 않는다. 정성을 다해 치장도 한다. 살을 찌운 메뚜기도 알을 밴다. 가시 돋친 밤송이도 아람을 벌리고 석류도 등이 터지게 알을 채웠다. 누구에게도 탓하지 않고 서로가 해코지하지 않으며 제 몫을 다한다. 과욕부리지도 않는다. 시샘하지도 않고 능력만큼만 한다. 크다고 허세 부리지 않고 작아도 비굴함이 없다. 붉으면 붉은 대로 좋고 노랗게 물들어도 좋고 분홍빛으로 물들어도 좋다. 푸르다고 미워하지 않고 검다고 저주하지 않는다. 반목과 질시는 우리의 전유물이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그들은 알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야단스럽지 않아 천박하지 않고 황홀하면서도 요란스럽지 않아 기품이 서린다. 언제 어디서나 제 모습과 제 빛깔을 감추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라서 믿음을 준다. 초목이 그러하고 오곡백과가 그러하다. 편을 가르지 않아도 그들은 제 몫을 다하여 제 모습과 제 빛깔을 오롯이 내놓는 가을이다. 상처받은 지난여름의 기억을 씻어내고 이제는 잊어도 좋을 지난날의 흔적들도 지우면서 아낌없는 제 모습을 들내 주는 그들이 고맙다.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나뭇잎도 짙푸른 색을 조금씩 지워가며 오색단장을 준비하느라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을 일으킨다. 순리마저 거역하는 우리의 허상이 섭리에 순응하는 자연이 부러워지는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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