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3·1운동 교회 종으로 시작
진주성-진주 3·1운동 교회 종으로 시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07 15: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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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3·1운동 교회 종으로 시작

진주 3·1운동은 진주 봉래동 교회 종소리를 듣고 시작했다.

진주 3·1운동에 대하여 최초 기록은 고등경찰이 상부에 보고한 문서에 1919년 3월 18일 낮 12시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신호용으로 사용하였다라고 했다.

그 당시 도청, 도경, 각 관공서가 주둔한 진주시의 경찰이 교회 종소리가 아닌데 가짜로 보고했다면 징계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진주 3·1운동 때 중앙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진주와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른 한규상 선생의 자서전에 보면 교회 종을 치자 시내 5곳에서 동시에 독립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고 한 책에 두 번이나 기재했다.

한규상 선생은 적십자병원 원장, 한일병원 원장을 역임했고 부부가 모두 항일투사로 정부 포상을 받은 분이다.

<경남도지>에 보면 정의의 교회 종소리로 시작했음을 밝혀 기재했으며 대구복심법원 집행지휘서에 보면 3월18일이 아닌 3월19일에 악기가 나타나고 있다.

2010년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에서 동아대학교와 합동으로 <독립운동 사적지>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부산, 경남, 울산 편을 2권으로 발간했는데 325면에 보니 1919년 2월말 고종 황제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한 김재화, 박대업, 정용길, 심두섭 등은 귀향 후 김재화의 집에 모여 비밀회합을 가지면서 진주 3·1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때 이강우, 권채근, 강달영 등도 가세하였다.

3월18일 12시 진주교회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중앙시장 재판소, 촉석공원, 매립지, 촉석루 입구, 봉곡동 등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천 여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진주교회에서는 산청에서 원래 종을 발견하고 회수를 시도했으나 반대로 고신측 목사의 고집으로 천안시 고신대학원 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 보관중이다.

현재 진주교회에서 3·1운동과 교회 종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비전관 6층에 역사관이 있어 사전에 예약하면 진주와 서부경남 교회사에 대하여 각종 자료와 책을 찾아 열람할 수 있다.

조헌국 전 교육장과 이지호 전 교장 선생님의 안내와 지도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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