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가을, 하동으로 가다
아침을 열며-가을, 하동으로 가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13 14: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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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가을, 하동으로 가다

3년 만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시절은 가을에다 하늘까지 청명했다. 팔십 리 하동포구를 감돌아 와서 옆구리로 감기는 바람은 선한 사람의 옷자락이 스치는 줄 알았다. 하동 터미널에 내려 행사장인 평사리까지 데려다줄 새 인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무턱대고 설레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시 한 줄을 두어 번 뇌이자 새 인연은 도착했고 우린 친구가 됐다.

가을 햇살이 그리 위대한 줄은 이미 조금쯤 알고 있었지만 통성명도 없이 친구먹게 하는 재주도 있음에 어리둥절 하는 사이 ‘토지문학제’가 열리고 있는 평사리에 닿았다. 토지문학제에서 하동문학상을 수상하는 시인 박구경을 만나서야 우리는 서로 소개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내 새 동무는 ‘갱남’ 어디어디서 교감을 아주 귀하게 수행하고 있는 박종국 시인이라는 것이었다.

한숨 돌리고 발아래 펼쳐진 평사리 들판을 바라보았다. 오오, 가을 햇살이 다글다글 반짝이는 황금들판이라니. 원래는 강물이 최참판댁 축담 아래까지 들어오는 걸 저 아래에다 둑으로 막아 논과 밭이 됐다는 새 동무의 전언은 감동이었다. 교감을 해서 그런가 아는 것도 많다고 슬쩍 꼬아주곤 금송화니 코스모스니 구절초니 가을꽃들을 함께 감상했다. 그는 꽃이름도 잘 알았다.

제아무리 오곡백화 무르익는 가을이라도 사람 없이 위대할 수는 없다. 축제가 좋은 것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 좋은 것은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인 박종국이 어찌어찌 좋은 사람인지는 그 옆에서 그림자처럼 함께 하는 아들과의 수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깨질 항아리 다루듯 부자가 서로 귀하게 대했다. 또한 진실과 진정이 뚝뚝 묻어났다.

요모조모 관찰해도 두 사람 언행에서 남 눈을 의식하는 겉치레나 위선은 찾아지지 않았다. 새 동무는 일박이일의 여정이 다할 때까지 천천히 서른을 넘긴 아들과 한편으론 조심스럽게, 다른 편으론 치열하게 수행해가는 모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들이 서른을 넘겼지만 앞으로 최소한 십 년간은 먹고살기에 대해선 접어두기로 하고 시를 쓰고 공부하기에 진지하기로 했다고.

우리 다섯의 일행은 이제 ‘먹고 살아야한다’는 끈질긴 고리를 화악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는 데에 마음을 모았다. 이에 내가 궁시렁 거렸다. 쌀 20킬로만 있으면 혼자서는 서너 달은 산다고. 이어 교감동무가 앞으로는 집도 남아돈다며 맞장구를 쳤다. 박구경 시인의 오두막(별장?)에 여름내 우거진 풀을 매는 걸 마지막 여정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핀 맨드라미 꽃자주색이 정말이지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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