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세월만 필사하던 아버지
시와 함께하는 세상-세월만 필사하던 아버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14 14:4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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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세월만 필사하던 아버지

남보다 먼 아버지였다.
단 한 번도 집 떠난 적 없었지만 늘 밖이었던 아버지였다.
가진 것은 뒷짐뿐인
검불도 쥐지 못할 만큼 가벼운 아버지였다.
전부(全部)였으나 일부(一部)도 아니었던
세월만 필사하던 아버지였다.
그림자마저 점점 짧아져 희미해지던 아버지였다.

난생처음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여유가 되면 오십만 원만 빌려달라고, 엄마에게 보청기를 해줬으면 한다고, 너도 자식 키우느라 힘들 텐데 미안하다고, 가을쯤 갚는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깊고 깊은 달팽이관 속에서 헤매던 엄마였다. 뭔 말씀이냐고, 당장 보내드린다고, 더 필요하지 않으시냐고, 부자간에 뭘 갚느냐고, 부담 갖지 마시라고 했다. 수화기를 열 번은 더 들었다 놓았을 아버지의 무정한 손이 어깨 위에 얹히는 듯했다. 달팽이관 속에서 달팽이가 울었다.

(이진욱, ‘무정’)

전반부에서 운문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결론은 산문 형식으로 마무리를 하는 작품이 특징적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유도 없이 아버지에게 반항심이 일어났던 것이, 말끝마다 반목했었고 반목할 때마다 세대 차이라는 신무기로 항명했던 시절…, 아마 그 시절에 내가 소년에서 남자로 돌연변이가 일어났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조금씩 져주기 시작했던 아버지가 그로부터 수년 후 정말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하셨던 것 같다.

어려운 가정 형편상 자식들에게 남들만큼 풍족히 먹여주거나 충분히 입혀 줄 수 없었던 미안함…, 그것을 원죄의 족쇄로 만들어 스스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들의 아버지는 점점 그림자가 짧아지고 희미해진 존재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질 줄 알았던 아버지의 존재가 왜 이렇게 더욱더 또렷해지고, 일부도 아니었던 아버지가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흔들고 있을까.

근원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오래된 뿌리라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고 오래전 지금의 나였다는 사실이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은 정말 인간이었기 때문에, 혹은 철이 들지 못했던 시절의 몽매할 당시였기에, 라는 말로 변명하기가 무척 부끄럽다.

언제나 더 말을 걸어보고 싶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치와 논리로 무장한 아들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던 예전 아버지의 자리에 지금은 내가 앉아 있다. 그리하여 점차 젊은 아들을 어려워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대물림 받은 숙명이다. 아버지는 세월을 필사만 하고 계셨다고 생각했던 내가 매우 죄스럽다. 그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많지 않았을 당시, 겉으로는 세월만 보낸 것 같지만, 속으로 얼마나 많은 번뇌와 갈등으로 일관하셨을지 이제야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그 아버지는 안 계신다.

그대여, 먼 날에 생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자리가 빈 공간으로 남아 있을 때 천 번 후회하고 그리워해 봐야 소용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금 바로 인식해 주시기를…, 늦게서야 그 허무함을 깨달은 못난 사람은 오늘 빛바랜 사진 앞에서 ‘막걸리 한잔’이라는 유행가를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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