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월상달
아침을 열며-시월상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14 15:0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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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시월상달

시월상달. 햇살이 눈부시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상쾌하다. 하늘대는 코스모스, 이름 모를 들꽃 꽃잎들이 일으키는 향기 바람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마음을 이고 간다. 긴 장마와 태풍에도 아랑 곳 없이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오곡백과는 무르익고, 황금빛 가을 들녘은 온통 금빛 향내로 가득하다.

가을에는 누구든 님이 되어 가을 길을 걸으며, 누구든 님이 되어 더불어 두 손 모아 마음 드린다. 날은 좋고, 사람은 그립고, 먹을 것은 풍부하여, 다시없는 이 꿈같은 선경(仙境)을 어디서 찾겠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란 말이 어찌 그리도 입맛에 짝 들어맞아 귀밑까지 걸리는지. 하여 옛사람들은 어김없이 저절로 이 좋은 시월상달이면 길일(吉日)을 잡아, 마음 가지런히 가을하늘 우러러 더덩실 춤추며 축복과 감사의 경배를 다 같이 드렸나 보다. 좋은 날 좋은 때 시절이 좋기만 하니 어찌 못 해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옛 사람들은 가을하늘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나 보다.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그리고 이름 모를 고을고을 마다의 가을부터 겨울까지의 축제...그 옛날 하늘을 우러러 펼치는 잔치 향연(饗宴)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렌다. 지금 사람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마음은 축제의 기운으로 아름답게 들떠 오른다.

하여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아프게 느껴질 때면, 한 번쯤 고갤 들어 맑은 하늘 한 번 바라보는 것도 마음 결 살리는 씻김굿 아니겠는가. 하늘에는 부귀영화 빈부격차 금수저 흙수저가 따로 없다. 그저 그렇게 자연 앞에 고결하게 빛나는 생명일 뿐 우열과 차등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but). 우리의 발바닥이 땅에 닿아 땅을 딛고 있으니, 땅의 굴곡(屈曲)에 맞추어 걷지 않을 수 없다. 땅의 지위(地位)에 따라 구부리고 오므리고 펼쳤다 숙였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힘차게 달릴 때도 있으나 조심스럽게 발끝으로 걸어야 할 때도 있고, 쿵쾅거릴 때도 있으나 고요히 숨죽여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헛짚는 인생살이, 울적하여 분개(憤慨)할 때도 있지만, 헛헛하게 털어버리지 않으면 가슴이 아려서 살 수가 없을 때가 더 많다.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하늘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철 따라 사는 것이니, 우리가 어찌 땅의 형편을 애써 모른 체하며 살 수 있겠는가. 저마다 지위의 형편에 따라 저마다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도리 외 다른 방도가 없지 않은가.

작년엔 진주 남강의 밤 구경이 무척 화려하였는데, 올해엔 그저 말없이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만 되 던지며 고요히 강물만 흐른다. 경자년 들어 확실히 세상은 무토(戊土)에서 기토(己土)의 시대로 변해버린 것 같다. 세상은 온통 눈에 보이지도 않은 전자(電子)알갱이, 바이러스가 지배하고 있다. 지금 내가 다닥거리며 두드리고 있는 컴퓨터 자판, 모니터, CPU, 스마트 폰, 라디오, 텔레비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무척 고맙고 위험스런 원자력 발전소, 핵폭탄,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총 한 방, 채찍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고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나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아마 훗날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의 세상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것의 세상이다.

어떻든 세상은 작은 것들이 은밀하나 확실하게 지배하는 작은 것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없는 것 같아도 없다고 무시(無視)하는 순간 곧바로 뒤처짐을 당하는 그런 세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래서 옛사람의 명언들도 살아 숨 쉰다. ‘언덕은 내려다보더라도 사람은 내려다보지 말라.’, ‘사람 팔자 시간문제’니 ‘지금은 네가 칼자루를 쥐고 으스대지만, 어느 순간 네가 잡고 있는 그 칼끝에 네 목이 뎅강 날아갈 줄 모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짧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더 기막히게 짧디 짧다. 숙살지기(肅殺之氣), 가을 밤바람 한 결에 꽃잎 날아가는 것은 일순간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하였으나 SNS 손가락질 한방이면 ‘밤새 안녕’이다.

하여 이제 작고 이름 없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들의 위대함에 눈을 떠야 할 때다. 기토의 시운은 시민 개개인이 자기 권리의 고함만 지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작은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 자기의무를 충실하게 해야 할 때이다. 나라의 정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겉그림만 화려하고 허황되게 외칠 것이 아니라, 떼거리로 몰려 고함만 질러대는 집단화된 세력들에게만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오돌 차게 편 가름한 자기편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백 없고 힘없어도 남 탓 세상 원망하지 않고, 고요히 자기 이름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시어(詩語)로 쓰고 있는 해맑은 사람을 찾아 이들의 고운 소릴 들어야 할 시운이다. 기토의 시대정신이 그러하다.

부디 시월상달 좋은 날, 나라의 권세를 잡은 님들이여, 제 편 챙기기,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그 옛날 하늘빛처럼 푸르디푸르게 고운 빛 밝은 빛을, 해맑은 온 누리에 한없이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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