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개 숙인 벼
기고-고개 숙인 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15 13:5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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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고개 숙인 벼

가을 들녘을 지나다 발을 멈추었다.

노랗게 익은 벼가 온 들녘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눈이 부시도록 그 빛이 아름답고 가슴에 풍부한 느낌이 가득 찬다. 익은 벼를 보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은 농부의 흐뭇한 눈빛과 마음으로 변한다.

무르익은 벼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도 아무런 이유 없이 고개가 숙여진다. 알이 가득 차고 무르익은 벼는 그 무게를 못 이겨 고개를 숙인다. 허리까지 휘어져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알이 여무도록 가을의 따뜻한 햇볕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가늘고 약간 이 삭목으로 엄청난 무게의 알맹이를 짊어지고 허리가 휘어져 쓰러질 때 까지 버텨다가 알이 다 여물면 자신을 희생하고 말라진다. 우리 인생의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벼를 가면이 보기만 하는데 내가 왜 고개가 숙여 질까 하고 한참을 생각해본다.

잘난 척하고 예의 바르지 않는 사람에게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많이 배우면 고개를 숙인다’라고 충고한다. 사전에는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을수록 겸손하고 남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런 말이라고 한다.

속담 속에서도 이 말이 경험과 지혜.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 겸손하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내가 고개 숙인 벼를 보고 나도 고개를 숙인 것은 이런 사전상의 고개를 숙이는 조건을 갖추어지지 않아서 인지, 삶 속에서 고개 숙인 벼 같이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자질을 갖추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에서 인지 모르겠다.

우린 많은 고개 숙임을 경험한다. 권력과 부 앞에서는 고개 숙임이 생활의 방법과 수단이 되어 버린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다.그러나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고개 숙임을 보면서 속담이 알려주는 진정한 고개 숙임이 자신의 모자람을 대변하는 고개 숙임으로 변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의 진정한 의미와 참뜻이 권력과 부 앞에서의 고개 숙임으로 특히 갑 질 앞에서의 고개 숙임으로 퇴색되지 않으면 좋겠다.

무르익어 고개 숙인 벼들이 온 들녘을 황금으로 물 들이 듯 온 세상에 무르익은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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