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전설이 되려고해요
시와 함께하는 세상-전설이 되려고해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21 16:04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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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전설이 되려고해요

귀를 잘라 버렸으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는다지요

귀만 남은 전설이 될 수 있다지요

눈도 사라지고
코도 사라지고, 입도 사라지고
얼굴마저 뭉개진
무시무시한 전설이 될 수 있겠군요

전설이 되려 해요
기억할 수 없는
물고기였던, 파충류였던, 거대한 포유류였던
먼 자궁의 자궁을 지나온
전생이고, 후생이었던,

무거운 귀를 벗지 못해서
벗어서 걸어둘 고리가 없어서
귀를 잘라요

잘린 귀에서
아무도 모르게 귀 하나가 새로 자라

때론 눈이 되고
코가 되고, 입술이 되어
잘린 귀의 전설을 폭로하더라도

귀를 잘라요
먼 전설이 되려고 해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관한 시작과 결말 같은 전설이 되려고 해요

(한보경, ‘시의 귀’)

참 재미있는 시다. 선승이 오도(悟道)를 하기 위해서 화두(話頭)가 필요하듯이 예술가도 훌륭한 예술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영감이 필요하다. 시를 쓴다는 것 역시 창작예술의 한 분야이다. 시인은 훌륭한 시를 쓰고 싶은 욕망을 위 시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반 고흐의 초상화를 보면 귀가 없고 대신 붕대로 귀를 감싼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그중에서 고갱과의 논쟁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귀가 없는 초상화를 그린 그림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고갱과의 논쟁에서, 고흐는 논쟁에서 선점을 잡기 위해서 즉석에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여담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조 영조 때 전라도 무주에 최북(崔北)이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스스로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고 불렀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중국 화풍으로 그리지 않고 오직 조선의 산수화만을 그렸으며, 고집 또한 대단하여 어느 날 어느 권세가가 그의 그림을 요구하자, 거만한 권세가를 태도를 싫어하여 단번에 거절하게 되고 그 권세가는 다시 위협적으로 그림을 요구하자 그 자리에서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버리면서 끝까지 그림을 거부하였다는 일화 역시 먼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흐나 최북은 모두 개성이 강하여 사람들로부터 괴팍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어쨌든 신념이 강했던 인물로 지금도 미술사에서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개성이 있듯, 글 예술인 시를 쓰는 사람도 당연히 이러한 개성이 필요하다. 시인들 역시 남들이 쓸 수 없을 정도의 독특한 시를 쓰고 싶다는 충동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굳이 귀나 눈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코든 입술이든 상관없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결말은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은 위 두 사례를 통해서 알아봤을 것이다. 소문 없이 귀를 잘랐던 고흐였지만, 결국 소문은 퍼지게 되어 있었고(아무도 모르게 귀 하나가 새로 자람) 마침내 전설이 되어 전생을 넘고 넘어, 과장적이기는 하지만, 진화론적 입장에서 봤을 때, 포유류를 넘어 파충류 이전 그리고 어류에서 출발한 생명의 시작점에서(먼 자궁의 자궁을 지나온/전생이고, 후생이었던,) 먼 전설로 탄생하여 그 주인공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 활동을 한다면, 한 번쯤은 꿈꾸는 일이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우리 지역 출신인 김이듬 시인이 수년 전 발간한 <히스테리아>가 한국 문학사상 처음으로 ‘전미 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수상한 쾌거를 이뤘다는 소식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며, 영화와 음악 그리고 한식 요리에 이어 한류 문학도 세계로 세계로 퍼져가고 있음에 기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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