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개미와 베짱이(3)
도민칼럼-개미와 베짱이(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22 15: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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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개미와 베짱이(3)

내가 태어나 자라던 고향에서는 상민이 아닌 결혼한 남자에게는 아내가 시집온 동네이름을 붙여 택호를 부쳐준다. 아내가 진주에서 시집을 오고 남편의 성이 박 씨라면 진주박샌이라고 부르며 아내에게는 진주떡이라 부른다. 곧, 샌=생원 떡=댁이라고 호칭을 붙여 부른다. 순천여수, 광양, 구례, 곡성, 고흥, 보성지방 전남동부6군과 이웃지역에서는 지금도 택호를 사용하고 있다. 경상도지방에서 진주댁이, 사천댁이, 하는 것과 같다.

옛날 필자의 고향 마을에 베짱이와 매미와 같은 삶을 살다 간 세동짐샌과 연지동조샌이라고 불렀던 두 분이 있었다. 읽는 분들에게 재미를 더 하기 위해 고향동네에서 부르던 택호를 덧붙여 봤다.

세동짐샌과 연지동조샌이라. 고 부르는 두 분은 부모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머슴도 큰 머슴, 작은 머슴, 둘씩이나 부리고 살았었지만, 술만 마시고 일은 하지 않았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두 분 모두 결국은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 부인마저 집을 나가버리고 빈털터리가 되고 만 것이다. 두 분은 일이라고는 해 보지 안했기 때문에 머슴살이도 할 수도 없었다. 조씨는 맘씨 좋은 집에 들어가 아기도 봐 주고 소도 먹여주기도 해, 그 집에서 먹고 자고 숙식을 해결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워낙 게을러서 일은 하지 않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얻어먹고 살았다. 잠자리는 동네회관에서 그리고 동네사랑방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마땅히 밥을 얻어먹으러 갈만한 집이 많지 않았었다. 필자의 아버지와 또래가 되는 분이라 우리 집에는 하루걸러 오다시피 했었다. 당시에는 양식도 변변치 않던 때인데도 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밀쳐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겸상해야 하고 어린 맘에 말도 못 하고 맘속으로만 우리 집에 온 것을 불평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철에는 아버지와 같이 장기를 두고 점심저녁까지 해결하고 가는 날이 많았다. 그러잖아도 비좁은 단칸방에서 두 분이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감내해야 했으며 좁은 방을 다 차지를 하니 애먼 우리 삼남매만 맘고생을 참 많이도 했었다. 김씨는 또 양반 치레를 하는 것인지 한복만 고집했다. 한복은 빨래도 불편하다. 한번 입으면 계절이 바뀔 때까지 입어야 했으니, 더럽혀진 하얀색 한복은 검은색으로 변하여 하얀 바탕은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입기 일쑤였다. 대바구니와 대소쿠리를 만드는 기술이 있어 소쿠리를 만들면 주막집에 갖다 주고 술 바꿔먹기를 했으니 베짱이와 매미처럼 내일을 대비하지 않는다고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요즘은 플라스틱제품에 밀려 죽제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는 용기들이 옛날에는 거의 대나무 제품이었다. 대바구니나 소쿠리를 만들어 팔아 얼마든지 겨울을 준비하고 노후를 대비하고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양반 체면 때문이었는지 죽을 때까지 매미와 베짱이 같은 삶을 살고 간 것이다.

필자가 고향 떠난 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조씨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었다. 그 집에서 일찍이 수의와 관도 준비해 주고,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도 치러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세동짐샌은 당시에 같은 마을에 바로 아래 동생분이 살고 있었고 이웃 마을에는 막냇동생이 살고 있었다. 부모가 살았을 때는 동네서 떵떵거리고 살았었지만 곶감 빼먹듯이 했으니 이들 삼형제가 베짱이와 매미 같은 삶을 살았었다. 우리 마을에나 이웃마을에 두 동생은 그들의 부인들이 자식들과 남편을 밥을 얻어다 먹여 살렸었다. 그러나 세동짐샌은 부인이 집을 일찍 나가버려 가족에게 의지 하지도 못했다. 임종을 해 주는 사람도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이 교훈이 개미와 베짱이, 꿀벌과 매미의 이솝이야기에서처럼 이 같은 비극이 노후에 일어나지 않게 우리 모두, 교훈으로 삼아 가슴속에 새겼으면 한다.

필자는 경제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가정을 이뤘기 때문에 신혼 때는 고생을 하며 어렵게 살았었다. 정말이지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었다. 그러나 워낙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이루기는 힘들었다. 베짱이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생활공간을 마련했고 늙어서는 꿈에 그리던 문학 꿈을 이뤘다. 개미와 베짱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삼복더위 기간이지만 더운 줄을 모르고 글쓰기에 전념을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개미와 꿀벌 같은 삶을 누리고 있다. 선풍기를 돌리고 있고 한 낮이 되면 에어컨을 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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