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촉석루에서 차 한 잔 즐겨요
도민칼럼-촉석루에서 차 한 잔 즐겨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26 15: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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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촉석루에서 차 한 잔 즐겨요

도시거리에 10월의 마지막 밤은 언제나 화려한 추억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진주 촉석루에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회연사(會宴史)가 있었다. 그런데 해마다 10월 보름날 밤을 맞으면 지나간 몇 가지 추억이 생각난다. 어른들 모시고 촉석루 누각에 찻자리를 펴 하동 작설을 끓어 조상에 헌다(獻茶)하고 한송정 달빛처럼 시 노래의 밤 찻자리의 추억, 그 어른들 결의로 진주차례회, 진주차도회, 진주차인회, 즉 차회(茶會)란 명칭으로 단체를 발기하게 된다. 한국 차 운동의 방향, 한국 차의 날 제정, 전 국민의 차생활 교육 및 인격화운동을 목표로 결사(結社)가 10월 보름날 밤 촉석루 첫자리에서 결의된다. 당시 어른들은 이미 작고했고 청년 심부름꾼이 필자이다.

이런 행사의 시작은 1975년으로 생각되고 10월 보름날 달은 밝았다. 이날 국문학자. 한학자 고미술 수집상 10여명과 박○○교장의 주선으로 촉석루 누각에 모여 처음으로 차회란 명칭이 설명되었다, 필자는 연락책으로 박○○교장 김○○교수, 박○○교수 등을 모셨고 고미술수집상 안내를 맞았다.

이○○강사(경대)가 시를 낭송, 허헌(한학자) 최○○사장이 한시가 시를 읊었다. 성○○여사가 장구를 쳤고 일본 연구차 갔던 김○○교수가 일본차도를 설명했다, 청이도 찻잔을 가진 김○○씨를 박○○교장의 추천으로 초대 진주차도회장으로 추대된다. 아울러 한일 국제 차회 장소를 촉석루로 제안하고 발기를 선언하면서 필자는 연락책, 관장 손○○은 기획, 재목 총무는 최○○사장으로 선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 인사 말씀에 ‘촉석루에서 차 한 잔 즐겨요’가 생각이 난다, 이 행사 계기로 다음 해 한일차회가 처음 열린 일자를 기준으로 진주차인회 창립 50년사를 기념했다.

1978년 10월 보름날 오후 박○○이 해인사를 거쳐 진주로 와서 촉석루 누각에 박○○교장 박○○씨, 박화백, 김기원이 차를 마시면서 두 가지 건의가 성립된다 한국차인회 창립, 한국 차의 날 선포 장소를 진주 촉석루를 의논했다. 남해 하천다숙으로 이동하여 그날 밤 10월 보름날이 근대 한국 차 문화 운동의 시발점이라 잃을 수 없는 그 날이 생각난다. 필자가 한국 차의 날 선포식준비위원회 총책임을 맞아 일하게 된 것도 10월 보름날 밤 촉석루 찻자리가 만든 발자취로 유독 생각이 깊다.

역사적 문헌에 차회란 용어를 사용하기보다 신라는 관회(關會), 고려의 다례(茶禮), 조선의 다계(茶契)로 차회(茶會)란 명칭이 없다, 진주 차인이 처음 차회(茶會)란 용어를 사용한 모임이고 최초로 발기되어 사용한 장소가 곧 촉석루였다.

1981년, 전국 차인, 단체 차기 업이 모여 5월25일을 ‘한국 차의 날’을 선포하고 김대렴 차 추원비 건립된다 한국 차의 날은 제정은 입춘으로 100일을 기준했고 100일은 생명의 부활, 영통. 기원의 효과 등에 연계된다. 한편 차생활 교육 및 인격화 운동을 목표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에 다도교육이며 다도를 통한 학생의 인격화 교육을 문교부가 구상하여 장학관 천거하는 과정에 일본다도의 혼용이 역작으로 초래했다.

차 생활의 기본은 질 좋은 물, 차, 찻잔에 물불 인간 행위가 합작되는 행위이다.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 일대는 질 좋은 그릇 도자기 식기류를 제작하는 고령토 유명 산지로 세계인의 눈도장이 집합된 곳이다. 임진왜란 전까지 서부 경남 12현에 생산된 식기류 수입국이 일본이다. 임진왜란 때 도공을 모두 잡아갔고 그 이후 진 좋은 고령토를 수입했다. 도자기 수출에 청나라와 경쟁 결과가 청일전쟁의 원인을 유발했다. 뿐만 아니라 고령토 운반 목적으로 하동까지 철도가 부설된다. 일본 귀족 속에 최고 찻잔이 조선의 서부 경남 12현 일대 생산찻잔이고 일본 국보가 된 이도(정호, 丁戶)찻잔의 원산지 역시 진주 목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이고 차는 남악 지리산을 중심으로 차나무 산지가 조성되어 차 문화에 관계되는 지명, 문헌 문서 차시가 많은 것으로 입증된다. 그래서 한국 차 문화 운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고장이 진주라 애칭 하는 것도 이해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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