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진주성-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01 15:04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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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고려 말의 뛰어난 선승 나옹 스님의 누님이 쓴 ‘부운(浮雲)’이라는 선시(禪詩)가 있다. ‘공수래공수거시인생(空手來空手去是人生) 생종하처래사향하처거(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하략-’ 그 뜻을 한글로 옮겨 보자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나는 것은 어디서 나는 것이며 가는 것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한번 구름이 저 하늘에 이는 것이고,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저 구름이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최근에 타계한 의령 출신의 삼성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자신의 집무실에 자신의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쓴 ‘공수래 공수거’라는 글귀를 걸어 놓았다고 있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이 글귀를 무척 좋아해서 서예작품으로 많이 남겼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원불교 신도로 무소유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이 글귀를 항상 가까이 한 것이다.

법정 스님도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으며,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면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실천은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잉소비와 포식사회가 우리를 병들게 한다던 법정 스님은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중생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짊어지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음은 법정 스님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성철 스님의 무소유 삶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성철 스님은 법랍 58세에 열반했지만 한 가지 장삼가사와 하나의 목탁(一衣一鐸)으로 80평생을 보내셨으니 그분의 절제와 검소에서 이 시대를 슬기롭게 사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성철 스님의 생가에 세워진 산청 겁외사에 가면 평소 스님이 입으시고 사용하시던 장삼과 목탁, 그리고 스님이 사용했던 물건들과 책들이 진열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스님의 향기를 선사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생전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해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역시도 범부(凡夫)들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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