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시와 함께하는 세상-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04 13:2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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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진주 장터 생 어물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진 어스름을

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 엄매야, 울 엄매

별 밭은 또 그리 멀어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든가 손 시리게 떨든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에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박재삼, ‘추억에서 67’)

오늘은 우리 지역 시인의 작품을 한편 소개할 까한다. 이 시는 해방 전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 우리들의 엄마는 어린 자식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었다. 시인의 어머니는 그 방법으로 생선을 파는 방법을 선택했다.

박재삼 193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3년 후에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로 돌아와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 시절이면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 팍팍하던 시절이 아닌가. 박재삼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저 먼 바닷가 삼천포에서 진주까지 도보로 생선을 팔려 다닌 어머니,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다 보니, 일 년 365일 동안 수없이 진주 남강을 지나다녀도, 그 맑은 물결은 볼 수가 없었다는 서글픔은 박재삼에게는 평생의 한이 되었을 것이다.

가져간 생선을 다 팔기 위해서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지만, 그래도 때때로 다 못 팔고 장사 끝에 남은 몇 마리의 고기를 가지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것은 여름날 새벽에 싱싱한 생선이었지만, 팔고 남은 생선 몇 마리 집으로 가져오면 싱싱했던 생선의 눈깔은 어느새 은빛으로 변해 있었던 시절,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엄매야, 울엄매”라고 울부짖을 뿐이니,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엄마 또한//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옹기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우리 엄마들의 가장 큰 한이 서린 곳이다. 화가 나면 장독대에서 옹기를 닦았고, 참아야 할 일이 생겨도 장독대 옹기를 찾았던 우리들의 엄마, 시인은 그 옹기를 통해 엄마의 이미지를 찾았고, 그 옹기를 통해 엄마의 고통과 한을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추억은 회고이고 회고는 결국 모태(母胎)라는 논리로 볼 때, 옹기라는 존재는 어머니의 상과 연결되고 시인이 끝내 들어가 동경했던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그 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모태 회귀본능이 아닐까. 시인의 작품 속에는 그러한 내면들이 잠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말처럼 완전한 원환(圓環)의 이미지(옹기처럼)는 우리가 마음을 가다듬는 데 도움을 주며, 스스로의 근원적인 존재의(탄생의 문 즉, 어머니라는 문) 성격을 되찾게 해주며, 우리의 존재가 내밀하게 내적임을 확정해 준다. 왜냐하면 외면적 형상을 모두 제거해 버리고 내면(의식 속 즉, 회고)으로부터 경험되어질 때는 둥글지(어머니의 문) 않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한 것과 같다고 했듯 옹기를 시상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어머니를 회고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꼭 필요했으며 그러하기 때문에 시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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