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깃털이 당신의 심장에 쌓여요
시와 함께하는 세상-깃털이 당신의 심장에 쌓여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11 16:2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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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깃털이 당신의 심장에 쌓여요


그림자에 앉은 깃털이 흔들려요 새가 개울물 소리에
맞춰 깃털을 흔들고 있어요 시간의 깃털이 당신의 심장에 쌓여요


그림자를 슬며 당신이 개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박우담, ‘자귀꽃’)

짧고 간결한 시이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시적 대상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라 하겠다. 이 시를 쓴 박우담 시인은 우리 지역 사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시인으로 필자가 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 좋기로 정평이 나 있으며, 외견상 덩치가 크면서 활달한 시인인데도 불구하고 시어를 선택함에 있어서 무척 섬세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 문단 사적으로 볼 때 비슷한 예가 있는데, 리리시즘(Lyricism)의 대가인 조지훈 선생 역시 180이 넘는 당시로서는 거구였지만, 그가 노래한 서정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예를 미뤄볼 때,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서두가 장황한 것은 이 시를 보면 왠지 그러한 면이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자귀 꽃’이름부터 매우 부드러운 이미지로 시작되고 있다. 독자 분들은 ‘자귀 꽃’을 한번 보았는지 확인하고 싶다. 만약 보지 못했다면 인터넷으로 지금 당장 자귀 꽃을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꽃나무가 매우 크며 주로 남부지방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큰 나무에 꽃도 매우 크지만, 그 큰 꽃술이 얼마나 부드럽고 하늘하늘한지 마치 바람이 불 때면 금방 바람에 드러누워 버릴 것 같은 꽃술이 수천수만 개가 나 있어서 볼수록 간드러질 듯하다. 그것은 큰 덩치에 비해 섬세한 정서가 한가득한 시인과도 무척 닮은꼴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꽃의 향기인데 꽃향기도 꽃향기거니와 이 자귀 꽃은 희한하게도 잎에서도 향기가 나는데, 그 향기가 한여름 날에 시원한 냉채 국을 만들기 위해 오이를 칼질할 때 나는 그 향기와 비슷하여 향기만 볼 때, 절로 오이냉채 국이 생각나게 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자귀 꽃은 꽃과 잎에서 동시에 부드러운 향을 낸다는 의미에서 더욱 여성스러움을 느낄 수가 있다.

세상에는 가벼운 사물의 대명사로 곧잘 새의 깃털에 자주 비유한다. 자귀 꽃의 그 꽃술들은 분명 새의 깃털과 같다. 시인의 예리한 눈은 자귀 꽃을 통해서 새의 깃털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깃털로 금방이라도 졸졸졸 소리를 내는 시냇가에서 목욕하는 새를 이미지화한 것이니 정말 예리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새가 목욕하는 장면은 물가에서 깃털을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어 날개를 털고 부리로 날개 구석구석으로 물을 뿌리는 방법으로 하는데, 그럴 때면 마냥 하늘거리는 깃털의 속 부분이 한없이 간들거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자귀 꽃 또한 그러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연한 속살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흔들릴 때마다 꽃뿔 아랫부분이 하얗게 드러나는데, 시인은 그것을 바로 새의 속 털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새가 개울물 소리에/ 맞춰 깃털을 흔들고 있어요//’ 라고 메타포(metaphor)를 설정했을 것이다. 그러한 메타포 앞에 적어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들 심장 뛰는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심장 뛰는 소리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쌓인 만큼 당신의 마지막까지 남은 한 줌의 감성마저도 맑은 물처럼 부드럽고 연하게 물속의 세상처럼 감성도 함께 흐느적거릴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사람은 절대로 외모를 가지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진리는 전체의 삼분의 일도 안 된다는 말이 있듯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우담 시인의 이러한 여린 감성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고개가 갸웃해지는 순간이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고 있는 순간에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자귀 꽃에 대한 시를 한편 소개해 보았는데, 혹여 여름 꽃을 생각하면 추위를 다소 이겨 낼 수 있는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할 것 같아 소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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