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갑과 을
도민칼럼-갑과 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12 14:4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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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갑과 을


50년도 훨씬 전에 일이다. 우리 마을에는 겨울 농한기가 되면 서당(書堂) 훈장을 하던 할아버지가 동네 사랑방에서 겨울방학을 이용해 서당을 열고 한문을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

나도 겨울방학 때마다 마을 서당에 가서 한문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의 육십갑자를 줄인 말로 한다면 육갑(六甲)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갑(甲)을(乙) 병(丙) 정(丁) 무(戊)기(己) 경(庚) 신(辛) 임(壬)계(癸)의 십간(十干)과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십이지(十二支)의 12 동물의 띠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12간지의 동물의 띠를 설명을 하면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가 맨 마지막 12번째 동물이 된다.

어렸을 때 겨울방학 때마다 육갑과 천자문을 공부했던 덕택으로 내가 한문을 많이 알고 있다 는 말을 동네 사람들에게 듣기도 했다. 청년이 되어서는 후배 동생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쳐 주면서 나에게 필요한 공부를 했던 기억도 있다.

12간지 중에 쥐띠가 맨 앞에 시작하게 된 재미있는 얘기를 서당 공부를 하면서 훈장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었던 기억이 있어 나열 해보려 한다.

하나님께서 12동물이 살고 있는 동물나라에 육십갑자를 만들기 위해 순번을 지정하려고 하자 12동물들이 서로 앞 번호로 넣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하나님께서는 지금으로 말하면 마라톤 경주를 열었다고 했다. 하루 동안 달리는 거리를 지정을 해 주고 결승점을 들어오는 순서대로 순번을 정해 주기로 한바, 12마리의 동물들이 서로 앞에 들어오려고 경쟁을 했다. 쥐가 쉬지 않고 끈기 있게 달리는 소의 뿔 위에 앉아 있었으나, 소는 덩치가 큰 동물이라 몸집이 작은 쥐가 머리에 나 있는 뿔 위에 앉아 있는 쥐의 무게를 느낄 수도 없었다. 자기 앞에는 다른 동물이 달리는 모습이 안 보이니 자기가 1등이라는 뿌듯함으로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결승선 바로 앞에서 소의 머리에 앉아 있다가 뛰어내리는 쥐에게 맨 앞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는 우스운 얘기를 내 나름대로 재미있게 꾸며서 써 봤다.

위의 얘기를 통해 순위가 정해졌던 갑이 되는 쥐와 을이 되는 소의 존재가치를 따진다면 갑이 되는 쥐는 을이 되는 소와 비교가 되겠는가 말이다. 인간세계에서 가치를 따진다면 쥐는 존재가치도 없는 동물이지만, 소와 사람은 떨어져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수 천 년을 함께 해왔다.

말하자면 쥐는 소의 머리에 나있는 뿔 위에 앉아 비교적 편안하게 갑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억울하게 을이 된 소는 땀을 뻘뻘 흘렸어도 을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갑의 자리를 차지한 쥐는 을을 차지한 소에게 감사해야 하고, 소의 우람함과 부지런하고 끈기 있는 뚝심을 인정해주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에 내가 천자문을 배우고 육갑을 공부할 때만 해도 갑의 횡포니 갑을 관계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갑과 을이란 용어가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갑과 을이라는 생활용어를 처음 대하게 된 것은 거의 30년 전이다. 월세 방으로만 옮겨 다니며 살던 때라, 전세계약서를 쓸 일이 없었다. 그 후 돈이 조금 모아지자 보증금을 조금 걸고 부동산 중개소에서 전세계약서를 작성할 때이었다.

계약서에는 건물 주인이 임대인(賃貸人)이 되며 세를 사는 사람이 임차인(賃借人)이 되고, 임대인을 갑이라 하고 임차인을 을이라 한다. 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본 적이 있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항상 계약서에 글귀내용은 갑인 임대인을 우선시 했던 내용이었다. 이후로도 계속되는 셋방살이로 부동산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갑과 을이 되는 계약 관계는 면하지 못하고 살다가 내가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하면서부터 주택으로 인한 갑을 관계는 면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갑과 을이 되는 계약서를 그만 쓰고 살 수 있겠다. 는 생각은 다시 한 번 빗나가는 갑을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내가 유통업을 하고 있었는데 모 제지회사와 대리점 계약을 하면서 그 회사에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하고 대리점을 계약을 했었다. 회사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회사는 갑이 되고 대리점은 을이 된다고 표기가 되어 있었다. 갑에게 을이 되어야 하는 멍에를 다시 쓰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제품도 담보가액까지 제품을 내려 보내 주고, 어음도 결제를 인정해주더니만 몇 년 지나다가는 어음은 입금으로 받아 주지를 안 했으며 담보물에 50%이상 오버되면 제품을 주지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지금 말하는 갑질의 횡포가 노골적으로 자행되는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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