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틱톡 단상 같음과 다름
아침을 열며-틱톡 단상 같음과 다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15 15: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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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틱톡 단상 같음과 다름

2020년, 전 세계를 뒤덮은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에도 이런저런 사건들은 변함없이 발생해 매일 매일의 뉴스란을 채워준다. 그 중의 하나. 별스러움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G2로 치고 올라온 중국과 각을 세우면서 그 대표적 IT 기업의 하나인 틱톡(Tik-Tok)을 건드렸다. 중국공산당에 의한 개인정보의 악용 운운하면서 그 매각 혹은 금지를 종용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이 기업의 세계적 인기 내지 위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60대인 나도 이 앱의 애용자다. 무료한 빈 시간을 소비하기에 이만큼 매력적인 도구도 많지 않다. 평균 15초 전후의 동영상 플랫폼인 이 앱은 유튜브 보다도 더욱 간편해 뿌리치기 힘든 중독성을 갖는다. 나는 지난 일 년간 중국 북경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이 앱의 매력에 은근히 중독되고 말았다. 귀국 이후에도 가지고 온 중국폰으로 이 앱의 영상들을 여전히 즐기고 있다.

워낙 좋아하다 보니 한국폰에도 이것을 내려 받아 깔아놓았다. 그런데, 분명 같은 회사의 같은 물건인데도 내가 한국에서 내려 받은 이 ‘틱톡’과 중국에서 내려 받은 ‘도우인’(抖音)은 그 내용이 달랐다. 콘텐츠인 동영상을 올리는 주체가 각각 한국인과 중국인이니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한국판의 영상 중에는 중국 사용자가 올린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그 내용이 다르다.

나는 이 다름에 대해 좀 호기심이 생겼다. 뭐가 다를까? 왜 다를까? 이 다름의 의미는 뭘까? 철학자의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단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기에 한국의 그것은 ‘재미’가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반면 중국의 그것은 ‘미학’이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마추어라 그 내막은 잘 알지 못한다. 특별히 ‘팔로잉’(关注)하는 게 없는지라 그냥 회사가 제공하는 ‘추천’(推荐) 영상을 볼 뿐이다. 이 추천은 기본적으로 AI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선호하는 것을 이 AI가 간파하고 내 입맛에 맞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 앱에서는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AI의 차이일까?

사용자 전체의 선호도가 이 추천에는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사용자의 선호, 내가 즐겨하는 철학적 용어로는 ‘관심의 방향’ 혹은 ‘관심의 종류’다. 이런 게 여기서 드러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의 중국 친구들이 한국인의 이런 관심 방향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이 쓰였다. 중국인들의 관심은 간단히 ‘미학’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갈래가 있다. 우선, 젊은 여성들의 미모자랑이 가장 많은데, 얼굴이나 몸매가 기본이긴 하지만 거기엔 중국의 전통의상인 ‘한푸’, ‘치파오’, ‘부채’, ‘머리장식’ 등등 문화적인 요소들이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전역의 명소들, 아름다운 풍경, 휘황찬란한 도시야경, 역사적 건축물 등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공부가 되는 역사적 사실들도 곧잘 등장하고 세계 각국과 비교하는 이런저런 통계 그래프들도 등장한다. 대개의 경우 중국은 바닥에서 치고 올라와 결국 최상위에 위치한다. 중국화와 전통음악과 서예도 단골 메뉴다. 기발한 옥 세공을 비롯한 조각작품도 단골 메뉴다. 전통춤도 마찬가지다. 그 재주들이 탄복을 자아낸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자긍심과 애국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다. 내가 즐겨 하는 말로 모두다 ‘가치’와 관련된 것들이다.

같은 회사의 같은 상품이건만, 그 사용자에 따라 그 내용은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이런 다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때 중국을 가난한 나라, 지저분한 나라로 인식하고 은근히 우월감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다. 저들은 지금 거의 전 분야에서 우리를 추월해 앞서가고 있다. 우리에게 불편한 저들의 중화 주의적 오만도 거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들은 지난 2000 수백 년간,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옮겨 이사 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질 높은 콘텐츠를 개발해서 저 ‘틱톡’에 담아 사용자들의 의식을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 낄낄거리며 놀기만 하는 국민을 우러러볼 나라는 지상 어디에도 없다. 영상 하나에도 ‘질’이라는 게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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