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진주성-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15 15:36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불교 게송(偈頌)이 있다. 이는 ‘육조단경’에 나오는 혜능 스님의 게이다. 요지는 “제 아무리 좋은 것도 본래 없었던 것만 못하느니라”라는 뜻이다. 원전은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명경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는 것이니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이다.

노납이 새삼 ‘본래무일물’을 들먹이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무일물’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돈과 명예, 권력을 탐하고 있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물론 모든 사물도 본래 텅 비어 있어 어떠한 것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어떤 것도 가질 만한 게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털끝만큼도 집착할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는 ‘본래무일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도 가지고 온 것도 없고 갈 때도 가지고 가는 것이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손익, 대립과 갈등, 근심과 번뇌 또한 본래 없다. 우리가 거기에 붙들려 사니 문제다. 거기에 붙들려 노심초사하며 안절부절하니 오히려 번뇌만 깊어지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래가 아무 것도 없었으나 업력(業力)의 진화로 유상(有相)이 생겨났지만 순식간에 순수함이 오염되면서 불성은 사라지고 애욕의 싹이 트면서 번뇌의 고통들이 판을 쳐 본래 자리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해서 무상(無相)을 유상(有相)인양 착각하고 육신의 종으로 오욕락(娛慾樂)만을 쫓다가 육신이 배반할 때면 애욕의 씨앗을 못 잊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허망한 세상을 살면서도 유독 인간만이 세상에 온 흔적을 남기려고 부질없는 몸부림을 친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텅 빈 마음의 욕구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무상(無相)의 세계로 떠날 것조차 예상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속히 떨쳐 버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요, 영원한 생명일 것이다. 우리는 유상(有相) 속에서 무상(無相)의 흔적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이다. 약하다고 가난하다고 아는 것이 없다고 슬퍼하거나 기죽지 말자.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듯 행복과 불행이 둘이 아닐 것이다. 영원한 강자나 약자도 없는 것이 진정한 부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