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
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향의 추억커피를 배운다고 처음 찾아간 분당의 모 카페에 문을 열자마자 짙게 로스팅된 커피향이 벽과 천정 구석구석에서 오랫동안 머금고 있다가 낯선 손님을 찾아오자 향기로 맞이하는 듯 조금씩 조금씩 뱉어 내고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었던 복잡하고 매력 넘치는 향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강하게 볶여진 케냐 커피 향과 달콤하게 구워낸 브라질 커피향도 나는 듯했고 생두에 묻어있는 먼지와 마대자루 냄새도 비빔밥처럼 섞여 향기로 느껴지는 듯 했다.
어릴 적 일 년에 한두 번 찾아가는 외갓집에 가서 외할아버지 방에 들어서면 고급 보이차를 포대 체 한가득 넣어 보관해 둔 것과 같은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집에서 마셔왔던 막걸리에 질렸는지 중국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을 마시고 싶어 큰맘 먹고 가끔 가는 중국식당에 가서 외할아버지 방에서 맡았던 눅눅하고 발효되면서 오랫동안 장사한 카페의 커피 향과 가을날 바스락 낙엽의 건초 향이 가득한 장향 중국술 한 병을 사다가 며칠 동안 한 잔씩 맛있게 마시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다 병 바닥이 마를 때까지 향기와 맛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20년 넘은 와인들이 매력 있는 건 익숙한 포도향이 아닌 긴 세월 동안 숙성되면서 마치 중국술의 농향 같은 향이나 홍차, 보이차, 송이버섯 등 입 안 가득 은은하고 매혹적인 다양한 향이 나기 때문이다.
제철 피어난 아름다운 꽃마다 서로 다른 달콤한 향이 나고, 나뭇잎에서도 새싹의 싱그러운 향과 겨울이면 마른 낙엽 향이 나듯 현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서는 향과 냄새가 추억 속에 기억되게 한다.
향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삶이라면 날마다 건조하게 살고 있는 것이고, 이 가을 낙엽이라도 주워서 맡아 낙엽향이라도 느꼈다면 감성 있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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