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무이! 아궁이 불 꺼졌는지 한 번 더 보이소오 예
기고-어무이! 아궁이 불 꺼졌는지 한 번 더 보이소오 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17 16: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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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문/의령소방서장
조현문/의령소방서장-어무이! 아궁이 불 꺼졌는지 한 번 더 보이소오 예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꽃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둑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덕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택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곽재구, ‘고향’)

이 시를 읽으면 어린 시절 지리산 산골자락 원당댁네 외양간 소(牛) 먹이 쇠죽을 쑤는 막내였던 때가 떠오른다. 아궁이에 한 아름 콩대와 나뭇가지를 가져다 불을 붙이면 음, 메 하고 소는 배고프다고 빨리 달라고 안달이다. 급한 마음에 불쏘시개를 계속해서 밀어 넣다보면 가져다 놓은 더미로 불이 번지면 어무이(어머니의 경상도 사투리)는 불호령과 부지깽이 세례로 조심성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소방관이 된 필자는 늦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드는 11월 ‘불조심 강의 달이’ 되면 아련히 그 시절이 생각난다. ‘너도 나도 불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 표어도 불이 많이 나는 이때쯤이면 입 안에서 맴돈다. ‘불조심 강조의 달’은 올해로 73년째를 맞는다.

소방에서 이렇게 달을 지정해서 운영하는 이유는 화기취급이 많아지는 본격적인 겨울철을 국민이 안전하게 보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달은 화재예방을 위해 주택이나 다중이용시설에 취약요인이 없는지 점검하고 보완한다. 또 불조심 홍보와 교육도 실시해 안전의식도 높이는 사전준비와 대비의 기간이다.

경상남도 소방본부에서 분석한 최근 5년간(2015~2019년) 겨울철(12월에서 2월까지)에 발생한 화재는 연평균 675건이고, 사망자는 연간 평균보다 겨울철에 인명피해가 높아 화재안전 추진이 특히 중요하다.

화재발생 장소는 주거시설, 자동차, 공장 순이고 원인은 부주의, 전기적 요인, 원인미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거시설 화재는 단독주택, 공동주택, 기타 주거시설 순으로 발생했다.

화재는 예방과 대응이 중요하다. 먼저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설치된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지관리와 점검하고 수리해야 한다. 또한 전기나 가스는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주변에 잘 타는 것이나 그 성질을 가진 물질은 멀리해야 한다.

불이 나면 인명대피를 최우선으로 하고, 규모가 작은 경우는 소화기 등으로 신속히 불을 끈다. 하지만 규모가 클 경우에는 불이 난 것을 큰 소리로 알리면서 자세를 낮추고 손수건 등으로 코와 입을 보호하면서 지상이나 옥상으로 재빠르게 대피한다.

1945년 해방 이후 나온 불조심 표어 가운데 1964년부터 사용된 ‘너도 나도 불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과 ‘꺼진 불도 다시보자’가 가장 오래된 표어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가장 오래된 표어가 지금 현재에도 적용되는 화재 예방과 대응의 지침이 아닌가 한다.

내 어린 시절 우리 어무이 원당댁의 그 부지깽이는 불조심에 대한 경고였고, 인생에 있어 조심성에 대한 채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가르침을 줄 어무이도 옆에 없다. 이제는 내가 어무이 역할을 대신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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