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호박잎이 너덜대며 찢겨지는
시와 함께하는 세상-호박잎이 너덜대며 찢겨지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18 15:0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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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호박잎이 너덜대며 찢겨지는

지프가 한 대 지나가면
비켜서서 가장자리 쑥풀들을
밟겠습니다. 몇 대 더 그런 차가 지나가면
호박잎이 뽀얀 흙먼지를 입겠고 힘겹게
늘어져 있을 테지만,
한차례
짧은 비로
그 잎은 푸른 제 빛을 찾을 겁니다. 그때가
반짝이며 빛나던 호박잎이 너덜대며 찢겨지는
바로 그때입니다.

(김소연, ‘바로 그때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어버리면 ‘이게 뭐냐?’라고 반문하고 싶은 시이다. 호박잎이 예쁘게 피는 것도 아닌 찢겨지는 게 뭐, 이렇게 반문하고 싶은 시이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보면 역시 김소연 시인은 정말 내공이 뛰어난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관자(管子)에 종이부시(終而復始)라는 말이 있다. 즉, ‘천하의 이치는 끝마치자마자 다시 새로운 이치가 탄생하여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항상 있는 상태가 됨에 끝이 없다’라 했는데, 이 논리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변증법과 같은 논리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지만, 영원하지 않는 것도 없다.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할 때, 그 존재가 역할을 다하게 되면 대체적인 존재가 곧바로 나타나기 때문인데, 비유하자면 현재의 강물은 항상 강가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물은 어제의 물이 오늘의 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발전(진화)은 기존의 불합리한 것을 끝내고(終)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復始)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쑥을 밟으면 기존의 쑥은 말라 죽겠지만, 다시 어린 쑥은 태어날 것이고, 호박잎이 더러워지고 찢어지면 어린 호박잎은 다시 돋아날 것이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물러나면 신세대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잠시 빗물에 씻긴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그것은 잠시 잠깐일 뿐 흘러가는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 순간 잠시의 빛을 발하더라도 마치 찢겨진 호박잎처럼 다시 붙을 수가 없다. 그때 그 순간에 등장하는 것이 무엇일까. 당연히 새 호박잎(신세대)이 되는 것이다.

외부적으로 지프라는 물리적인 상황으로 쑥을 밟아야만 할 상황에서 먼지가 쌓인 호박잎에 잠깐의 비가 내리고 나면 다시 푸른 잎을 볼 수 있듯, 오랜 시달림 끝에 찢어지는 호박잎은 그 순간은 현상의 마지막(終)이 되는 순간이자 새로운 현상이 시작(復始)의 순간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세상 이치의 마지막과 시작의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면서 그 이름을 ‘바로 그때입니다’라고 하고 있다. 참 정확하게 순간을 포착하고 있으며, 수긍이 가는 상황이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파괴의 신이라 불리는 시바신(siva)을 숭배하는데 그 파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파괴가 아니라, 낡은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니, 무질서가 아닌 질서를 위한 파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힌두교도들의 명제는 ‘파괴는 제2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바 신(siva 神)을 숭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방면에서 수많은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룰(rule)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줄이 무너지는 상황이 예사가 되다시피 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반성하지 못하고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마침내 종국에 가서는 운이 없어서 적발되었다는 식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회적 분위기에 동승한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다시 한 번 종이부시(終而復始)가 생각나게 하는 “바로 그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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