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밥상은 축복이다
세상사는 이야기-밥상은 축복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22 15:4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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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자/시인
백숙자/시인-밥상은 축복이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밥상, 먹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살아있음의 증표요, 기이로운 축복이며 행운이다.

먹는다는 것은 살기 위한 수단이며 또 먹어야 살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한 일과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따로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다. 좀 귀찮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 세끼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요즘은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아니고, 먹을거리가 너무 많아서 또 너무 넘쳐서 밥을 여사로 여겨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아침밥은 굶고 출근한다고 하니 모든 어미는 걱정을 하지 않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때우는 무심함이 습관이 되어 한번이 두 번 그렇게 거르다 보니 아예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잘 먹는 것은 곧 큰돈을 버는 일이다.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하고 몸이 우선이다. 건강은 젊어서부터 지켜야 하니 모든 게 때가 있지만 건강은 나이와 상관없다.

젊어서는 사는 일이 더 급해 몸을 챙길 여유가 없다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정작 가장 소중한 자신의 건강은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니 밥 먹는 일에도 시간을 좀 투자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려면 과식하지 않고 고루고루 충분히 먹어 영양을 섭취하고 잠은 11시 전후로 자고 6시 전후에 일어나고 매일 조금씩 걸으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수할 수 있다고 하니까, 수행처럼 실천해보자, 습관을 조금만 바꾸어도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겠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마지막 임종도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스스로 먹고 화장실에 가고 속옷은 내 손으로 빨아 입으면서 자식들에게 짐은 되지 않으며 스스로 퇴물이 되지 않는 삶, 깨끗하게 편안하게 마감하는 생을 하루 세끼 밥으로 준비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요즘은 한 가정에 둘 아니면 거의 혼자인 경우다. 식구가 있는 가정은 식구를 위해서 식단을 만들어 함께 먹지만 혼자 먹는 사람은 대충 허기만 채운다. 나이를 먹으면 자꾸 게으름이 생겨 그러다 보면 몸이 부실해 병원을 자주 찾게 된다. 옛날 어른들께서는 밥이 보약이라고 하셨다. 밥심으로 하루를 무사하게 보낸다고 믿었다. 밥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루의 힘은 아침밥에서 나온다.

아침밥은 선물이며 보약이다. 더구나 누군가의 덕분이라 여기면 더 감사하고 고마울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 가버리는 게 시간이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너무나 잠깐인 인생, 그 고비마다 넘지 못할 언덕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삶은 왜 그리도 서럽고 고단했는지, 삶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도 전쟁의 참사를 겪으며 견디어 내는 강인함도 모두 밥의 힘이고 거기서 나오는 뱃심이다. 생존과 번식도 사실은 그 힘의 원동력일 것이다.

헉헉거리며 앞만 보고 달려 와보니 머지않아 보이는 인생의 종점, 그래서 붉게 매달린 저 나뭇잎이 바람에 몸살을 하는 것에 애증이 더 실리는지 모르겠다.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봄꽃을 잊어버리고 단풍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계절이기를 모두가 바랐건만 그 소망은 또 헛됨이 되었다.

바이러스에 감금된 가을이 더 애처로운 것은 비단 나만 갖는 서러움일까, 이것저것 다 견디어 여기까지 왔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신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내자, 그래서 밥상은 그간의 노고에 받는 보상이라고, 자신에게 주는 가장 멋진 상이라고 이름을 새겨서.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하루 세끼 량이 정해져 있다. 부자라서 하루에 다섯 끼 더 먹는 게 아니다. 가진 게 적다고 해서 꼭 부자보다 불행한 것도 아니니, 정성으로 밥상을 차리면 임금님의 수라상처럼 맛있지 않을까, 게으름 없이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이 나를 위해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라 생각하자,

그냥 나를 보지도 않고 무심히 가버리는 시간에서, 자식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홀로 서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내게 주워준 시간을 행복한 순간이라고 즐기자, 누군가가 말했다.

“추억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고 현재는 가지 않고 미래는 너무 더디게 온다고” 그렇다 더디게 오는 미래는 황금알을 낳는 것이다. 그 황금알을 받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도 접어 둘 수 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맛있는 음식처럼 저장해두고 보관하는 것이면 장롱 깊이 숨겨놓고 나 혼자 살짝만 펼쳐서 보게, 주머니에 넣고 만질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오늘은 되돌아오지 않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은 지금 밖에 없는 꿈같은 것, 그런 소중한 하루를 유지하려면 세끼를 충실히 먹어야 한다. 매일 연속인 거 같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무사 안온한 그것이 곧 행복이다. 아침에 집을 나간 식구들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함께 서로 얼굴을 보며 먹는 밥상, 주고받는 대화, 식구는 숲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와 같아서, 서로 생채기를 내기도 하지만 또 위로와 힘을 주는 비밀언덕이기도 하다. 나무와 숲이 가져오는 신선함과 안락함 그것이 숟가락을 부딪치는 식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도 수명을 다하면 나무처럼 비늘을 다 털어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뱃심에서 모든 근심 걱정은 사라진다. 그러니 든든하게 세끼 밥을 먹어야 한다.

감사하게 맞이하는 그 마음이 부자다. 비록 시간은 잡을 수 없어도 주어진 일상에 만족하는 마음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름다울 것이다. 마음이 편하면 좋은 생각이 나온다. 밥상 앞에 앉으면 오늘 이 순간이 나에게 최고의 생일상이라고 스스로 축하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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