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예술은 격려다
아침을 열며-예술은 격려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24 16: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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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예술은 격려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예술은 격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예술은 격려여야만 한다. 나아가 격려가 아니면 예술일 수 없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그것에서 벗어나 즐겁게 해줄 방법은 없을까 하는 데서 예술은 탄생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용기가 생긴다. 그가 죽어도 보기 위해 초상화를 그렸고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걸 보면 즐거우니까 더 오래 보기 위해 그리기 시작하고 기록해 남겼을 것이다. 악을 타파하고 선으로 살기 위해 고발해 개선되길 원했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했다. 자연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즐겁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예술의 어머니이며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자연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할 것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겨울의 하얀 눈을 보면 마음이 얼마나 순결해지는가. 큰 파도는 우리를 또 얼마나 겸손하게 하는가. 꽃은?

자연히 격려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말대로만 해석하면 용기를 북돋워 주는 걸 이른다. 주로 타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줄 때 격려하다고 하지만 요즈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기도 한다. 아마도 스스로 격려하기는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론 ‘격려는 심장을 내어주는 일’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심장을 내어주듯 마음을 다해 격려하라는 뜻이겠는데 의미심장하다. 심장의 따뜻한 온기와 팔딱팔딱 뛰는 심장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말이다. 특히 심장의 온기와 그 붉은 정열로 타인을 위로한다면 목숨인들 못 구할까!

이제 이쯤에서 스스로는 격려를 잘 하고 있느냐고 자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게 된다. 우선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아주 자신이 없다. 위로는커녕 혹사를 하고 있으니까. 두고,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격려는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곰곰 따져보자. 낙제점이 40점이라면 낙제점은 겨우 면했다며 슬며시 웃는다. 그게 어딘가 말이지. 욕심 같아선 100점을 받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업이 작가이니 좋은 소설로 읽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어야겠다. 좋은 소설은 당연히 사람과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하는 글이다. 이로운 소설을 쓰자면 진정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먼저 탐구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일상에서 가족과 이웃을 진정으로 매순간 매순간 위로할 일은 없는지 격려할 일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피자. 지금, 현재 만나고 있는 눈앞의 사람에게 크고 작은 불편함은 없는지 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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