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뒤꿈치가 홍시처럼 붉었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뒤꿈치가 홍시처럼 붉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25 15: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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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뒤꿈치가 홍시처럼 붉었다

아버지는 고드름 칼이었다
찌르기도 전에 너무 쉽게 부러졌다
나는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꿨다

머리를 감고 논길로 나가면
볏짚 탄내가 났다
흙 속에 검은 비닐 조각이 묻혀 있었다

어디 먼 데로 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동생은 눈발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고
젖은 발로 잠들었다
뒤꿈치가 홍시처럼 붉었다

자꾸만 잇몸에서 피가 났고
두 손을 모아 입 냄새를 맡곤 했다

왜 엄마는 화장을 하지 않고
도시로 간 언니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가끔 뺨을 맞기도 했지만 울지 않았다

몸속 어딘가 실핏줄이 당겨지면
뒤꿈치가 조금 들릴 것만 같았다

(신미나, ‘연’)

신미나 시인은 그렇게 많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의 시 속에는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의 연륜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시 <연>의 첫머리에 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를 등장시킴으로써 어려운 집안 형편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꾸고 있다고 했는데, 날아다니는 꿈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가정에서 성장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시인의 성장기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면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학적인 의미에서 ‘연’이란 존재는 먼 이상향을 동경하는 상징물로 연상되고 있는데, 신미나 시인의 어린 시절은 ‘연’과 같은 상황으로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자식이 현실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는 엄하게 규율을 지켜가고 있지만, 가난한 상황의 원인을 초래한 책임 의식 때문에 번번이 부러지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볏짚 탄내 그리고 검은 비닐 조각은 전형적인 농촌 생활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현실에 대한 시인의 현실적인 상황 특히, 검은 비닐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등은 부정적인 상황을 표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먼 데로 가고 싶지만, 비닐 조각이 묻혀 있듯 현실에 발목이 잡힌 시인은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고 동경만 할 뿐이다 는 것이다.

노란 오줌발처럼 동생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과 붉은 뒤꿈치, 피가 나는 잇몸 등은 가난한 생활과 함께 성장기에 영양소가 결핍된 상황을 형상화함으로써 뒤 연에서 엄마가 화장할 수 없는 사연과 도시로 떠나간 언니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메타포(metaphor)로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가난함과 그 가난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심리의 그것이리라.

‘실핏줄이 당겨지면 / 뒤꿈치가 조금씩 들릴 것만 같았다’라는 사실에서 서정적 자아가 성장기에 있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 방법은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진 표현이라 하겠다. 시의 구절마다 시대적인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하여 다소 지루할 듯도 하지만, 그러나 그 표현 방법 면에서 밀도가 높아 지루하다는 인식을 말끔하게 해소해 주는 특징이 보이는 것은 시인만의 고도로 단련된 언어를 조각하는 수준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오히려 상황적 내용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어서 어려운 생활의 심도를 한층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에서 나타난 연은 신미나의 유녀 시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대한민국 중년이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가난한 현실에서 도회지에 대한 동경 그리고 선뜻 벗어날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이 모든 것들이 80년대 이전의 우리들의 자화상이리라. 그것은 가난 속에서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던 다람쥐 쳇바퀴 같았던 생활, 시인은 그렇게 높은 연령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던 개발 시대의 모습을 비교적 담담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이번 시 <연>은 당시의 성장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 묘사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연이라는 상징성이 가지는 특징으로 볼 수 있는 동경과 연실이 의미하는 현실적인 딜레마(dilemma)의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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