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흙을 밀어냈던 자리
시와 함께하는 세상-흙을 밀어냈던 자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09 15:19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흙을 밀어냈던 자리

무를 뽑은 자리에
무가 있었던 작은 구멍들이 생겨나 있다

밑동이 조금씩 굵어지면서
흙을 밀어냈던 자리

빼낸 몸피만큼
구덩이들이
텃밭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
구덩이를 세어본다
서른여섯 개
(고영민, ‘감정’(感情))

짧고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작품이다. 오랜 세월 이를테면 무가 일생을 살아오는 동안의 흔적으로 느낄 사이 없이 조금씩 만들어 간 간극의 의미를 우리네 인간사에 이입시키고 있는 묘한 작품으로 보이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주변인들에게 끼친 삶의 이력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어느 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삶의 이미지를 심게 해준 이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작은 무라는 매개로 빌려서 감성을 표현한 훌륭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자신의 감성과 무에서 얻은 자신의 서정을 마치 예전에 새끼를 꼬듯 잘 융합시켜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영민 시인은 멋진 시를 지은 훌륭한 농부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시에는 숨은 반전이 많다. 그 반전의 실마리는 바로 제목에 있다. 이 시의 제목이 ‘감정’이란다. 무가 뽑힌 구멍과 감정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사람의 감정이란 상대방과 나 사이의 심리적인 틈새를 의미한다. 그 틈새라는 것이 없으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전혀 없을 수는 없는 것이라면 그 틈새라는 것이 아주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그 틈새가 무의 뿌리가 뽑히고 난 뒤의 구멍이라고 했을 때, 무가 자라는 동안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의 틈새가 조금씩 조금씩 생겼을 것이고 그동안 그 틈새는 무가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커져갔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무가 뽑히고 난 뒤에 그 틈새를 보면 제법 큰 간극의 깊이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새도 그러한 것이다. 처음 시작은 작은 대수롭지 않은 과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그 작은 일들은 상대방에게 조금씩 쌓인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그 상처가 어느 날 큰 상흔으로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시인 또한 누군가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상처를 받아 왔던 것 같다. 무가 자라면서 일생 동안의 틈새가 ‘구멍’이 되었듯 작가는 서른여섯 해를 사는 동안 서른여섯 번의 상처를 받았다는 논리가 되는 것 같다. 엄청난 양의 상처가 될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서른여섯’이라는 의미는 서른여섯 해를 의미하거나 서른여섯 번의 상처를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숫자 놀음에 불과하므로 결국 서른여섯 번이라는 의미는 작가가 살아온 일생 동안 받은 감정적인 상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에서 제목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시의 소재가 바로 시의 제목에 되는 까닭으로 시는 그 제목만 확인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정말 훌륭한 메타포를 가진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지막까지 그 내용을 읽고 제목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그 의미를 바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란 이렇게 숨은 반전이 있어야 하고 그 숨은 반전 때문에 우리는 시적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시적 매력을 우리는 시적 상징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적 상징성이 높을수록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영민의 시는 사람의 감정과 무를 뽑고 난 뒤에 남은 멍을 매개로 묘한 감정을 이입한 작품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