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중국’의 의미
아침을 열며-‘중국’의 의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14 15: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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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중국’의 의미

“중국을 왜 중국이라고 하는지 알아?”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좀 황당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너무 기니까 그걸 줄여서 중국이라고 하는 걸 모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걸 일부러 물을 턱이 없다. 원래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친구다. 왜? 했더니 그 친구 말이 걸작이다. “대국이라고 하기엔 하는 짓이 너무 쪼잔 하고 소국이라고 하기엔 덩치가 너무 커서 그저 한 중간 정도라는 뜻으로 중국이라고 하는 거야”라는 것이다. 하하 그냥 웃었다.

“그럼 한국은?” 했더니, “한심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한국이라고 하는 거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하 또 웃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실은 둘 다 따끔한 정치적 비평이 실려 있다.

중국이 대국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우리는 2000년 넘게 그 정치적-군사적-문화적 영향 하에 있었고 오늘날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 관계는 특히 그렇다. 중국은 한때 가난과 부실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젠 명실상부한 G2로서 세계의 중심이었던 예전의 위상에 근접해 있다. 한국과 일본을 추월한 지는 한참 지났다.

그러나 그런 이른바 ‘굴기’가, ‘돌아온 중국’이, 우리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우리를 대하는 저들의 태도 때문이다. 이른바 사드보복을 우리는 아직도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미군의 희생을 기린 BTS의 발언을 문제 삼아 또 다시 BTS 때리기에 나섰다. 저들의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모욕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항미원조’란 터무니없다. 한국과 중국은 한때 적국으로서 맞서 전쟁을 치른 사이다. 그 엄연한 역사적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양국관계는 그것을 서로 인정하고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가 시시비비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 어느 쪽도 양보할 사안이 아니니 그냥 묻어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이 힘의 우위를 배경으로 그걸 건드린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래서 ‘쪼잔한’ 것이다. 중국의 주석은 미국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을 ‘과거의 속국’이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역시 배려 없이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찾아간 우리 대통령을 홀대하기도 했다.

그런 소위 중화주의가 이웃에 대한 무시와 오만임을 저들은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면서도 당연한 듯 아랑곳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대국이라는 것은 ‘흐름의’ 하류다. 천하의 교차요 천하의 암컷이다. 암컷은 항상 조용함으로 수컷을 이긴다. 그렇게 조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의당 낮추어야 한다. 고로 대국은 소국에게 낮춤으로써 곧(=결과적으로) 소국을 취하고, 소국은 대국에게 낮춤으로써 곧(=결과적으로) 대국에게 취해지게 된다. 고로 어느 쪽은 낮추‘니까’(낮춤으로써) 취하고, 어느 쪽은 낮추‘지만’(낮춤에도 불구하고) 취한다. 대국은 상대방을/사람을 함께 기르고자 할 따름이며, 소국은 상대방을/사람을 들어가 섬기고자 할 따름이다. 무릇 양자가 각각 그 원하는 바를 얻으니, 큰 자는 의당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61절)

지면관계상 긴 해설은 생략하지만 ‘대국’은 소국에 대해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이른바 오만한 중화주의와는 반대다. 중국은 자국의 고전에 이런 사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중국은 공맹 노장을 비롯해 높이 평가할만한 요소들이 너무나 많은 나라다. 그러나 만일 스스로 높은 곳에 처해 이웃을 내려다보며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좋다 할 이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오만은 스스로의 공을 지우는 지우개와 같다. 중국은 아마 여러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대로 조만간 미국을 앞질러 G1으로 부상할 것이다. 나는 저들이 노자의 저 대국철학을 잊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우리대로 그때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국은 땅의 넓이와 인구의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국가의 크기는 기본적으로 칼-돈-손-붓 즉 군사력-경제력-기술력-문화력으로 결정된다. 이 힘들을 착실히 키워 중국보다 더 큰 ‘대국’으로 성장한다면 대한민국을 줄인 ‘대국’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이 아니다. 삼성과 BTS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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