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내 얼굴이 새를 따라가면
시와 함께하는 세상-내 얼굴이 새를 따라가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16 16:45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내 얼굴이 새를 따라가면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오려다 본다
내 눈썹을 밟고 검은 발목이 지나간다

하늘의 북쪽으로
집을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저녁의 구름이 내 눈썹 위로 날아든다

하늘의 서쪽에서
검은 빗방울들은
하늘의 새를 내 눈썹 위까지 끌어내린다

땅에서 죽은 말들은 공중으로 떠오른다

나는 이마에 새를 얹고
눈썹 아래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바람이 거꾸로 이마 위를 지나간다
새가 마르는 동안 얼굴이 방향을 바꾼다

서쪽에서 북쪽으로
새가 날아가며 죽는다
내 얼굴이 새를 따라가면 멀어진다

죽은 말들과 공중을 걸어가며
얼굴없는 나는
하늘가 멀리 점 하나를 본다

(신영배, ‘새의 점’)

오랜만에 이 계절에 어울리는 모던(modern)한 시 한편 소개하고자 한다. 두 번 세 번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시로 수년 전 읽어보았던 작품이다.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 철새들이 북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가는 날을 시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가한 어느 날 오후 창가에서 철새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 새들이 /내 눈썹을 밟고 검은 발목이 지나간다 고 한다. 첫 행부터 난해하다. 실지로 새가 사람의 눈썹을 밟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뜻일까. 힌트는 이어서 나오는 ‘검은 발목’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새의 그림자이다. 날아가는 새가 마침, 내 얼굴 위로 지나가면서 새의 검은 그림자가 내 눈썹 위로 지나가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저녁의 구름이 내 눈썹 위로 날아든다/는 자연스럽게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간다는 것이고, 이윽고 그 구름을 통해 비가 내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새가 날아간 잠깐 사이에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는 말이 된다.

생뚱맞은 것은/ 땅에서 죽은 말들은 공중으로 떠오른다/ 라는 말인데, 상황정리를 해 본다면, 갑자기 내리는 비에 대한 소회(이를테면, ‘갑자기 웬 비야?’라는 정도의 말)를 말하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말로,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면 이 비는 크게 우려스러울 정도의 큰비는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다만, 이어서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비를 맞은 상태에서 이마와 눈썹을 통해 빗물이 흐르는 모양과 뒤이어 비가 그치고 바람이 지나가는 상황, 그리고 그동안 잠깐 내린 비가 그쳐서 이마에 흐르던 빗물이 마르고 있었다는 것, 그러는 동안 철새들도 멀리 서쪽으로 북쪽을 날아가면서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즉, 그친 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작은 점이 되어 멀리 날아가는 철새를 바라본다는 결론이다.

모더니즘(modernism) 형태의 시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쉽고 간단하게 어느 날 창가에서 새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잠깐 사이에 비가 내렸다. 그쳤고, 그 사이 철새들은 멀리 날아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라고 몇 마디로 끝낼 수가 있지만, 언어를 매개로 하는 예술인 시에서는 사물을 보는 방법을 얼마만큼 아름답게 꾸미느냐에 따라서 시적 미학이 돋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번 시도 그러한 상황에 해당하며 사실적인 현상을 미사여구(美辭麗句)를 통해 미학적 감각을 가미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종의 요리에 있어서 미각을 돋우는 레시피(recipe)를 가미한 경우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철새를 소재로 하는 시는 이 계절과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하였고 차제에 오랜만에 모던한 시를 한 편을 소개해 보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