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고마운 목소리
세상사는 이야기-고마운 목소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20 17: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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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자/시인
백숙자/시인-고마운 목소리

코로나 19로 고통 받고 지쳐가는 시간이 끝나지 않고 있다.

물심양면 고통 받는 모든 사람과 확진자, 그 가족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하며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고인이 되신 수많은 생명에 삼가 명복을 빌며 나의 부처님께 내 나름 진심으로 추선 공양을 드리고 있다.

오랜 지병으로 1년에 몇 번씩 병원 신세를 지며 간당간당 건강을 유지해가는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이 몹시 두렵고 불안하다.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방역은 손 씻기 잘하고 집안을 청결하게 하며 되도록 외출을 안 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자 몸살감기에 걸렸다. 바람만 불어도 감기와 폐렴을 앓는데도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겁부터 났다. 두통과 열이 뜨겁고 기운이 없어도 병원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아 집에서 쉬면서 폐와 기관지에 특효라는 도라지와 돌배를 삶아서 마셨지만 열도 내리지 않고 두통이 더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병원 갈 준비를 하며 혹시 코로나라면 이게 집에 있는 마지막이 될 수 있겠구나, 오만가지 생각이 몸을 오르내리는 열만큼이나 많아져서 집안을 휘 뒤돌아보며 대문을 나섰다.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다잡으며 택시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문전에서 열 체크를 받았는데 느닷없이 선별 진로소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담당 간호사가 꼬치꼬치 묻는데 이걸 역학조사라는 건가, 어느 식당을 갔느냐 누구를 만났느냐는 등 만약에 내가 코로나라면 정말 어쩔까, 아찔한 생각들만 파도같이 밀려왔다.

열에 들떠서 그런지 검사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계속 무슨 질문들을 하는데 제대로 답을 했는지. 또 아픈 것이 무슨 잘못인가 정말 속이 상했다. 내과 선생님이 와서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가 하루 치 약을 받아 오겠다고 나간 사이 나는 선별검사도 약 처방도 모두 잊어버리고 오직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생각에 병원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 가느냐고, 집에 간다고 하니 약 가져가란다. 차를 돌려 선별진료소에 가니 약봉지와 카드를 내미는 간호사가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그동안 나는 아무래도 정신 줄을 놓은 모양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디에 있는가, 그 혼돈과 혼란의 순간에도 간호사는 아무도 만나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한다. 택시 운전자의 전화번호도 적으란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나를 태워준 고마운 운전자가 무슨 잘못인가 말이다. 몸도 가누기 힘든데, 나의 아픔보다 나로 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고 아파도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없는 현실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내일 아침에 결과가 나오면 알려 줄 테니 기다리고 있으란다. 지금이 얼마나 위급한 날들인지 아느냐. 이 통장 확진자가 무더기 쏟아지고 있으니 무조건 지시에 따라야 한단다.
하필이면 이럴 때 내가 아프다니 낮 동안의 긴장에 불안까지 겹쳐 밤새워 약에 취해 있었다.
밤은 너무 길었고 아침은 더디게 밝아왔다.

그러면서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아들이든 누구든 내가 없어도 무엇이든 찾을 수 있도록. 왠지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째깍째깍 시계 초점은 왜 저리도 느린가, 이튿날 오전 열 시가 조금 지나자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코로나 아닙니다” 아! 이 소리, 고마운 목소리! ‘휴’ 긴장이 풀리며 오금이 저린다더니 이 문구의 의미를 실감했다. 초조와 불안의 시간 속에 얽매었던 온갖 생각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 허약한 건강 때문에 너무 주눅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새봄은 꼭 오고야 말 것이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고마운 목소리 꼭 듣고 싶다. 코로나는 싹 물러갔다고, 이제 즐겁게 새봄을 맞이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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