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죽음의 의미와 종류(21)
칼럼-죽음의 의미와 종류(2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21 15: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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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죽음의 의미와 종류(21)

▲화장(火葬): 화장은 죽은 사람의 영혼의 해방으로 이해되었다. 사람을 태운 재를 담아 두었던 신석기 시대의 옹기들이 전 유럽에 걸쳐서 발견되기도 했다. BC1400년에서 AD200년 사이에 화장은 널리 확산되었으며, 특히 로마제국의 지배층에서 선호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화장을 금지하였는데, 그것은 사람의 육신이 한 번 파괴되면 다시 부활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유대교에서도 화장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유대인들은 화장은 신의 창조물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정통 유대교나 동방정교나 이슬람교도에게는 오늘날에도 화장이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힌두교들의 화장 문화는 사람이 죽으면 빨리 영혼이 들어있는 몸을 태워 버려야 그 영혼이 불길과 함께 천계(天界)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화장을 한다. 화장이 서구 사회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BC1세기경의 그리스였다. 화장은 처음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즉 전쟁에 나가서 전사했을 때나 고향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경우 시신을 처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서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 영웅들이 죽었을 때 화장을 한 기록들이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화장은 영웅적 인생을 산 사람이 마지막에 보여 주는 위대한 이벤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로이의 영웅들의 화장이란, 나뭇단을 가능한 한 높이 쌓은 후 그 위에 시신을 놓고 기름을 부은 후 불을 붙이는 방법이다. 그러면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게 되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 연기를 본 그리스인들은 영웅의 죽음을 알아채고 깊이 애도했던 것이다.

화장이 절정의 꽃을 피웠던 시기는 1세기 로마에서였다. 로마가 안정되고 절정기를 맞이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시절에 로마 귀족들은 더 이상 자신의 명예를 빛낼 길을 찾지 못하자 결국 장례식에서 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화장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영웅화시키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눈물단지(Lachrymatory)를 만들어 조문객들의 눈물을 모으는 일이었다. 로마 귀족들은 마치 일리아드의 영웅이라도 된 양 자신의 죽음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나뭇단을 높이 쌓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1세기 말엽에는 로마 시내에 나무가 한그루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진정한 영웅의 죽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의 양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존경과 애도의 표시로 여겨지기도 했다.

고대 페르시아나 이스라엘 등 근동지역 사람들은 작은 호리병 모양의 눈물병을 가지고 있었다. 즉 마음이 상해서 눈물을 흘릴 때 그 병에 눈물을 담아두는 풍속이 있었던 것이다. 구약성경 시편 56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근동지방에서부터 개인의 눈물을 담아두는 눈물병을 소중히 간직한 풍속이 로마시대까지 전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장례식 때 이 눈물병을 함께 매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로마 귀족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의 눈물뿐만 아니라, 남의 눈물까지 모아서 자기 장례식의 특별함을 뽐내려 했던 것이다. 화장에 필요한 나무는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의 눈물이야 말로 진정한 위엄과 가치를 보여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쿼바디스(1951)〉에서도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른 뒤, 부하에게 ‘눈물단지’를 가져오라고 명하며 자신은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모습이 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장례식에서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눈물단지를 만들어 노예들에게 조문객의 눈물을 받아내라고 명하기도 했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사실은 조문객들이 문상을 갈 때 눈물을 잘 흘리는 노예를 사서 함께 가기도 했다. 노예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로마사회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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