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테스’형 나훈아철학에 대한 소론
아침을 열며-‘테스’형 나훈아철학에 대한 소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21 15:16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테스’형 나훈아철학에 대한 소론

코로나19가 휩쓴 2020년의 한 풍경에 나훈아가 있었다. 그의 신곡 ‘테스형!’은 폭넓게 인구에 회자 되었다. 원로 트로트 가수와 역사적 대철학자의 조합은 그 자체로 절묘한 느낌을 준다. 의료대란과 맞물려 히포크라테스까지 얽힌 건 더욱 절묘하다. 나훈아의 나이가 73세이니 현재의 나이로만 보면 실은 70세에 죽은 소크라테스보다 그가 더 형인 셈이다.

나도 이젠 은퇴할 나이가 되었으니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 부르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 나훈아의 노래를 유심히 곱씹어 본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대중을 상대로 한 이런 가요를 누군가는 통속적이라며 비하할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에는 엄연히 철학이 있다. 나는 30수년의 강의경력과 30수권의 저술업적을 가진 철학 전문가의 권위로써 이 노래의 철학성을 인정하고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아픔, 묻는다, 고맙기는, 두렵다, 힘들어, 모르겠소, 아프다, 저세상, 천국...이런 단어들이 고스란히 다 철학적이다. 거기다 그는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왜 저래’, ‘어떤가요’ 라고 묻는다.

다 철학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육중한 질문들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질문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의 주제들은 덕, 진, 선, 미, 정의, 우정, 경건, 절제, 용기, 사랑...등등 더 넓고 높고 깊은 것이었지만 그가 이런 물음을 물은 배경에는 ‘세상이 왜 이래?’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깔려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나훈아는 한통속인 것이다.

나는 특히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와 ‘고맙기는 하여도...두렵다’,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라는 말을 압권이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아픔’이라는 단어가 징하게 내 가슴에 울려온다. ‘힘들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100% 공감이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도 ‘세월’에 대해서도 아픔과 두려움을 느낀다. 물론, ‘왜’라고 물어본들 정답은 없다. 소크라테스도 묻기만 했지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다.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즉, ‘무지의 지’가) 그의 철학의 가장 숭고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실은 아픔의 토로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철학이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세상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봤자 뭐 별 뾰족한 수도 없다. 물론 하는 데까지 해보는 게 우리의 삶이기는 하다. 단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말자. 어차피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게 이 세상을 실제로 살아본 나의 잠정적 결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훈아의 방법론은 나름 유의미하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바로 이거다. 일종의 승화 혹은 달관이다. 대중가수 나훈아는 한 70년 살고서 이렇게 철학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도 칸트나 헤겔 못지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저들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나는 평가한다. 훈아 형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