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품안의 자식
아침을 열며-품안의 자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22 15:5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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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품안의 자식

며칠 지나지 않아 21살이 되는 둘째를 내보냈다. 지난 초봄에 어찌어찌 해서 사 둔 반지하 집에 혼자 잠을 자던 남편에게 합류한 것이지만 나와 살지 않으니 독립은 독립이다. 두어 달 남짓 됐는데 자식을 독립시키는 걸 곰곰 생각하는 요즘이다.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자문하면 대답이 선뜻 안 나온다.

둘째는 기특하게도 수능을 마치자마자 알바를 찾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대찌개 식당에서 서너 달 일을 했다. 주인아저씨가 둘째가 일을 잘 한다고 칭찬했고 주인아주머니가 심술이 났다. 이에 주인아주머니가 둘째에게 심술을 부렸다. 나는 딸에게 그만두라고 충고 했고 둘째는 따랐다.

그리곤 알바 알선하는 곳과 열심히 통화를 해대더니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일하는 캐셔로 취직되었다.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가 일하는 시간인데 얼마간 다행이라며 불평 없이 일을 다녔다. 웬걸, 불만이 점점 많아지고 그걸 고스란히 들어주어야 하는 역할은 내 몫이었다.

자식이 둘 다 20세를 넘어 성인이 되었지만 식사준비와 청소 등, 모든 집안일은 여전이 내 몫이었다. 자식이 모두 성인이 된 만큼 내 몸은 늙었을 테지만 하는 일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자식들은 습관처럼 집안일엔 무심하고 나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관성에 절어 꾸역꾸역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관성에 의해 애교까지 섞어가며 일어나라고 둘째를 깨웠다. 속으론 이렇게 번번이 깨워서 밥해서 먹여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속도 모르고 둘째는 단잠을 깬 게 못내 아쉬운지 툴툴거렸다. 그래도 두어 번 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꾹 눌렀고 둘째는 왔다 갔다 하며 툴툴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가! 이제 더 이상은 안 돼. 더 이상 못하겠어. 나가서 네 맘대로 하고 살아. 분명히 말하는데 아빠집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야. 넌 일은 잘 하니까 네 돈 벌어서 자취해!” 좀 더 격하게 다퉜고 딸은 나갔다. 나는 너무너무 화가 났다. 모든 한국 엄마들의 화를 다 모아놓은 것처럼 많이 화가 났다.

몸은 많이 편해진 게 확실하다. 첫째는 진작 독립했으니 실상 나는 늙도 젊도 않은 독거노인이 된 것이고 내 몸만 건사하면 되니까. 마음이 편해졌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마음도 편하다. 아니, 편해야만 마땅하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또한 할 만큼 하지 않아도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는데 온갖 수발을 다 드는 건 옳지 않다는 결론을 명백히 한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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