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중 잣대 아시타비
아침을 열며-이중 잣대 아시타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23 15:0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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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이중 잣대 아시타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1:2)’라며 전도서를 쓴 저자는 세상과 인생의 덧없음을 읊조린다.

어느새 동지(冬至)가 지나고, 동지를 일년의 끝과 시작점으로 삼고 있는 문화권에서 볼 때, 12월 22일부터 지구는 또다시 태양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며 무심히 쏜살같이 달려간다. 이처럼 사람들이 정한 세월의 마디 언저리에서 또 때가 되니 교수사회는 참새처럼 짹짹거리며 억지로 지어내 한마디 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애써 알리려 한다.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말이다. 이젠 방송에서건 신문에서건 흔히 써 일상어가 되어버린 ‘내로남불’을 한자로 만든 말이란다.

‘내로남불’이란 ‘내가 하면 아름다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추악한 불륜’이라는 속말의 줄임말이다. 즉 ‘나는 되고 너는 안되고’, ‘내 말은 옳고 네 말은 틀리고’, ‘내가 받는 것은 미풍양속(美風良俗)의 선물(膳物)이고, 네가 받는 것은 부정부패(不正腐敗)의 뇌물(賂物)’이며, ‘내가 학교에 돈을 내어서 교수나 교사가 되는 것은 학교발전기여금이고, 네가 돈을 내어 교수나 교사가 되는 것은 교육의 청렴성을 해치며 공정의 기회를 박탈하는 더러운 오물(汚物)’이라는 믿음에 가까운 ‘이중 잣대’의 황금률이다.

내로남불의 뿌리는 깊다. 동서고금 총칼로써, 또는 선동선전으로써 정권을 뒤집어 차지한 것을 어떻게 기술(記述)하느냐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권장악에 성공한 세력은 그들의 집권행위를 혁명(革命, revolution)이라 자화자찬하며 기록하고, 그 세력에 반대하는 집단들은 이를 찬탈(簒奪) 또는 반역(反逆, coup d’etat)이라 폄훼(貶毁)하며 저항하는 것을 그 시작점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인구감소를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60년대에는 출산을 억제하는 산아제한정책을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를 홍보하려 다니는 공무원의 블랙코미디(black comedy) 같은 우스갯소리, “나는 대(代)가 끊어질까 염려가 되니 꼭 아들을 많이 낳아야 하지만, 너는 국가 인구억제정책에 적극 호응하여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아 잘 길러야 해”라는 말이 쓸쓸하게 회자(膾炙)된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내로남불이라는 말의 시작은 1980년대 중반 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의 기억으로 젊은 시절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들이 유행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1993년에는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이것이 IMF를 지나면서 2000년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속말로 유행하였고, 줄임말로 ‘내로남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급기야 마침내 교수사회에서 이를 새로운 사자성어로 탄생시킨 쾌거(快擧)를 이루었다.

내로남불의 이중 잣대는 리그스의 프리즘적 사회(prismatic society)에서 ‘가격의 이중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내가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왕창 싸게 팔고,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가표대로 또는 다른 이유를 붙여서 왕창 바가지를 씌어 파는 것을 말한다.

순박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심성이 분화되지 않고 자연에 가까워 착하기에 자연 그대로 거래를 이어 나간다. 고도로 발전되고 분화된 사회에서는 드러나 보여진 가격대로 거래가 형성된다. 가격의 속임, 왜곡, 착란은 이 중간 과정의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사람의 성향도 유사한 것 같다. 세상살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순박한 사람들의 말은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다. 세상과 인생을 통찰한 깨어 있는 사람들의 말 역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어중간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이다. 이들의 말을, 이들이 심사(心事)를 있는 그대로, 액면(額面) 그대로 받아들이다가는 에나 진짜 정말로 큰코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황금률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며, 오늘은 이 말하였다가, 내일을 또 저 말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좋은 머리로 일류 학벌에, 고시합격에, 좋은 아파트에, 높은 공직에, 명예로운 직책에, 어마어마한 권력을, 감당치 못할 돈을 거머쥘 때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뿐더러 일반 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들은 빼어난 우월의식과 특유의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너와 달라, 우리는 너희들과 근본적으로 계급이 달라, 다만 네가 존재하는 이유는 네가 나의 돈과, 명예와, 권력의 바탕이기 때문이야. 즉 너는 나의 생산기반이고, 노동수단이고, 소비자이고 봉에 불과해.’ “아∽그리운 조선시대의 신분계급제여! 개돼지 같은 민중”, “못사는 사람들이 밥을 집에서 해 먹지 미쳤다고 사먹냐?” 글 쓰고 나서 라면이나 끓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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