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시와 함께하는 세상-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06 08:4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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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구석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계단을 오르고 있다.
동굴벽화 몇 곳에 계단이 그려져 있고
점토판 설형문자는 “계단을 올랐다”로 해석되었다.

계단 끝에서 신들을 만났다는 소문이 돌자
엎드리고, 경배하고,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길과 이어진 계단에서 버려진 육체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막다른 계단은 따뜻했다.

“벽돌 창으로 새어 나온 불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그 빛은 언제나 나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스무 개의 절망과 한 개의 사랑을 품은 채
늙은 봉우리로 가는 계단에서 네루다는 실종되었다.

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아직 모른다.
신에 가까이 갈수록 찰나만큼 수명이 길어질까,
시간은 계단 위에 아주 느리게 파고들었다.

(신동호, ‘계단’)

이 시를 보면 예전의 계단에 대한 인식과 현재의 계단에 대한 인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이미 계단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부터 존재했단다. 역사적으로 유구한 시간이 아닐 수 없으며 그 계단이 탄생한 것은 신에게 가는 길이자 신의 숭배를 위한 제단에 오르기 위해서 존재했다. 따라서 계단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며 당연히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필요했던 상징성 그 자체이자 이후 절대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단은 엎드리고, 경배하고,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라고 했고 ‘길과 이어진 계단에서 버려진 육체들이 발견되었다’ 라고 한 것처럼 계단을 위해 서민들의 고통이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하며 권력 아래 숱한 약자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으므로 계단은 곧 권력이라는 등과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의 계단은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를 지닌 계단의 의미와 함께 새로운 의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즉 산동네 달동네의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의 정서도 함께 포함된다는 것이다. 굳이 ‘벽돌 창으로 새어 나온 불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그 빛은 언제나 나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라는 네루다(Pablo Neruda)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가난한 자의 한숨이 묻어 있고 그들의 절망적인 순간에 인근 벽돌 창으로부터 새어 나온 빛으로 약한 자의 가냘픈 희망을 위한 사다리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계단이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의 끝자락에 있는 계단은 항상 따듯하다는 것이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그들의 사는 세상은 언제나 인간적이고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계단이란 존재가 고대와 현재의 인식적 차이가 대조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아직 모른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애초 계단의 목적이 신의 숭배에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얼마만큼의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는지,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얼마만큼 그들의 수명 연장이 연장되었는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산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계단은 바쁠 것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신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아서 예전의 그 권력자들이 꿈을 꿨던 신의 은총을 받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계단 끝에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아주 따뜻한 인간적인 온기가 가득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란 그런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보는 보는 사람이 없이 그야말로 평범한 곳에서 교훈과 어떤 짙은 삶의 정서를 발견할 줄 아는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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