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나라 김치 맛은 엄마의 숫자 만큼이다
기고-우리나라 김치 맛은 엄마의 숫자 만큼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07 16:0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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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우리나라 김치 맛은 엄마의 숫자 만큼이다

60세가 넘은 어머님 세분이 품앗이로 김장을 한다. 코로나19 악마가 선물한 마스크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김장을 한다.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나는지 연신 옷소매로 머리에 쓴 수건을 문지른다.

함양군 마천면 삼장리 지리산 자락 해발 650m 한랭(寒冷)한 고령지(高嶺地)에서 직접 가꾼 고랭지(高冷地) 배추를 뽑아 그곳에서 김장을 한다. 김치를 담아 서울과 부산에 사는 아들과 딸에게 보낼 것과 자신들이 먹을 것을 같이 한다고 한다.

저린 배추가 한 쪽으로 누워 김치라는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해 어머님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고 옆에는 15가지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 맛있는 붉은색 양념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배추 하나하나 잎 사이사이에 60년 넘게 배우고 익혀 만든 이 양념을 골고루 버물린다.

배추에 양념을 버무려 김치로 변하면 이를 예쁘게 다듬어 겉의 푸른색 한 두 잎으로 보물을 감싸듯 돌돌 말아 김치통에 넣는다. 이때 양념이 잘 빼어들게 속살 부분이 위로 향하게 담는 지혜도 보인다.

김치통에 몇 번을 누르고 또 누르면서 엄마의 사랑을 담고 정성을 담고 행복의 원천인 엄마의 미소를 담는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먹는 것이 보이는 듯 눈가의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엄마가 담아 보내는 김치는 단순 반찬이 아니라 그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체험한 엄마로서의 도리 뿐만도 아닌 것 같다. 그건 아빠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찾을 수 없는 엄마만의 본심 그 원천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김치를 담그면서 배추 속살을 한 잎 때어 양념을 바르고 굴을 얹고 볶은 깨를 발라 잔심부름 하면서 구경하던 남편들의 입에 넣어 주면서 맛을 보라고 한다. 아삭아삭한 맛 매우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맛 바다 굴 냄새까지 그 맛의 조화는 우리 조상들이 선물한 최고의 맛 같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김장하는 날 생김치와 돼지고기수육을 먹는 전통이 있다. 그날도 돼지고기수육을 야외 장작 난로에 삶아 약간 크게 썰어 생김치와 먹기도 하고, 생김치에 굴을 얹어 볶은 깨를 발라 먹기도 했다.

모두들 먹기에 정신이 팔렸을 때 어머님 한 분이 “우리나라 김치 맛이 몇 가지나 될까요?”라고 한다.

김치의 종류가 많아 그 맛 또한 많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김치 공장의 숫자도 모르고 재료별. 개절별. 지역별 맛도 몰라 숫자를 가렴하기가 매우 어려워 모두 머뭇거렸다. 그때 “우리나라 김치 맛은 엄의의 숫자만큼 입니다” 라고 한다. 뿐만 아니란다. 한 엄마가 순간순간 만들 수 있는 김치 맛 그 또한 말 할 수없이 많다고 한다.

모두 짧은 순간이지만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의 손맛이 생각났는지 모두 자신의 어머님이 잘 담근 김치 맛을 자랑한다.

산속이라 이른 오후 시간인데도 조용함이 저만치 밀려온다. 새 들이 뛰놀던 나뭇가지가 어두움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달이 나무사이로 길을 비추어 줄 때 낙엽을 밟으면서 산속을 거닐지 싶었다. 그러나 그날 담은 생김치에 흰 쌀밥을 먹느라고 거닐지 못했다.

엄마의 숫자만큼 많은 김치! 그 김치가 오늘도 밥상 가운데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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