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전기밥솥
진주성-전기밥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12 15: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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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전기밥솥

동지를 지난지가 채 달포도 안 되었는데 벽시계는 아리비아 숫자 8에서 깜박거리며 아침햇살을 거실 가득하게 불러들인다. 식탁 옆에는 우렁각시도 아니면서 맛있는 취사가 완료되었다며 “밥을 잘 저어주세요” 하고 똑 소리 나게 일러준다. 예전에는 기특하고 고맙더니만 요즘은 암팡지고 맹랑해서 얄밉다. 갈 곳도 없는데 내쫓는 것 같아서 매일아침 이맘때면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하는 한다.

뭣 하러 서둘러! 아침밥 먹고 뭐할 건데? 누가 오라는데? 집사람이 얼른 챙겨줘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얼른 먹고 나가세요” 할 게지? 안 들어도 네 속을 다 안다. 내 쫓겠다는 것 아니냐? 거리두기가 뭔지 네가 알기나 해? 2.5단계도 모르지? 하기야 이상한 기도하는 종교집단도 모르는데 무식한 넌들 어찌 알겠어? 네 눈에는 저게 우주복 같이 보여? 저기가 달나라 아니야, 병원이고 진료소야, 왔다 갔다 하는 구급차가 네 눈에는 장난감으로 보여? 네 손주 사주고 싶어? 거리마다 문 닫힌 가게도 네 눈에는 안 보이잖아, 점포세를 못 내서 소리도 못 내고 가슴으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나 하니?

상가가 문 닫으면 그게 끝이 아니냐. 업주와 종업원은 따른 식구까지 굶겨야하고 세 못 받는 건물주는 대출금의 원리금도 못 내고 재료상은 재료상대로 줄줄이 파산이냐,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알기나 해? 사람 사는 것이 어디하나 연결 안 된 곳이 있는 줄 알아?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학교도 못 보내고 출근도 못하는 엄마아빠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데 네 귀에는 그 소리도 안 들려? 입학식도 못 하고 졸업식도 못하고 신년회 송년회도 못하고 결혼식마저 못해서 꽃이 안 팔려서 예쁜 꽃 다 갈아엎는 것도 못 봤어?

다른 것은 다 하나씩인데 눈과 귀는 왜 두 개인 줄 알아? 이 무식한 밥통아! 잘 보고 잘 들으라고 두 개씩 붙여 주었잖아! 네가 뭐 내 밥해주는 재미로 살아?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며 구원자인 척 하지만 사실은 전기세 잡아먹는 재미로 살잖아? 안 그래? 쌀도 물도 내 돈 주고 샀고 전기도 내 돈 주고 쓰잖아?

따지고 보면 네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그러면서 너희들끼리는 전깃줄 타고 전국으로 내 몰래 내통하고 있지? 어쩌면 전기세 많이 잡아먹을 수 있는지 지식 공유하잖아? 남이야 죽든 말든 관심 없잖아? 문학교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내 사무실이 있어도 요새는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 안 간다.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땀 냄새를 고마워하며 살 냄새를 사랑한다. 별일 없냐는 안부전화도 지금은 먹통인데 가기는 어디로 가 이 밥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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