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AI와 한국의 미래
아침을 열며-AI와 한국의 미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13 15:5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AI와 한국의 미래

‘연애의 과학’이란 접속방으로 출시 3주 만에 80만 명의 사용자를 끌었던 인공지능 ‘이루다’는 ‘개인정보 누출우려’와 ‘인권 인식’의 문제로 12일 오후 6시에 잠정 중단 상태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산업기반은 ‘인공지능(AI)’과 지속가능발전의 터전인 ‘환경보존’을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나 인공지능 분야는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들을 선두그룹에서 이끌어 나간다고 하니 좋아할 일인지 두려워하여야 할 일인지 선뜻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인공 지능을 장착한 각종 로봇의 활용으로 인류의 20%가 적절하게 일하고, 나머지 80%는 즐기고 놀면서 살아가는 풍요로운 세상이 된다고 상상하며 말한다. 20대 80의 비율은, 벌, 개미, 동물들의 군집 행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파레토는 핵심생산영역과 생산보조영역을 관찰하여 그 비율이 20대 80으로 된다고 했다. 이런 것에 비추어 보면 20%는 일하고 나머지 80%는 놀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한다. 지금처럼 80%가 일하고 20%가 노는 세상은 결국 80%의 노동력이 만든 생산이득을 20%의 소수가 독차지하게 되는 부 및 힘의 쏠림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고착되면서 필연적으로 양극화 세상으로 진행된다.

역사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극도의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저항과 반란, 그리고 혁명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끔찍한 증오와 살벌한 피비린내가 준동한다. 이런 역기능적 반작용을 막기 위해서도 생산인력의 비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인구구성에서 20% 정도의 생산인력은 인공지능 로봇을 활용하여 일을 하고,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놀면서 살아가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이다. 그리하여 미래사회는 혼자서 경쟁적으로 특출나게 ‘일을 잘하는 능력’보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함께 잘 노는 것’이 더 바람직한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세상으로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적인 전망과는 달리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새로운 파시즘(이탈리아어 파쇼(fascio, 묶는다, 결속한다)에서 온 말)을 부활시킨다” 왜냐하면 정보기술, 빅데이터는 절대다수보다 몇몇 소수만이 이를 다룰 수 있고 또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 혁명은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방식보다 소수가 결정하는 독재적 방식에 더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보기술과 생명공학이 결합하여 소수의 특정 목적과 가치만을 지향하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은 일반 대중들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제공한 우리 얼굴, 스스로의 몸의 형태, 움직이는 행태, 지문, 홍채, DNA, 질병, 몸의 약점 등의 빅 데이터로 인하여, 우리가 통제당하는 줄도 모르면서 통제당하고, 우리들의 일상은 시스템의 작동에 조종당하며, 우리의 존재는 평생 동안 노예신세로 살다가 죽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 그것이다.

인공지능 세상에 대한 유불리의 갑론을박이 그래서 지금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든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산업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전망에 대하여 기업인이자 정치학자인 조지 프리드만과 투자의 귀재(鬼才)로 불리는 금융인인 짐 로저스는 공통적으로 매우 극찬하고 있다. 특히 세계 4개 강대국과 직접 마주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유수한 역사·문화적 바탕, 역동적 활동과 우수한 연구역량, 개개인의 우수한 두뇌와 기량, 적극적 도전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전제는 남북한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되새겨보면, 지금처럼 남북한이 분리 적대적 상태가 계속되고, 지역끼리 쪼가리가 나 있으며, 정당끼리 서로 대립 저항적이며, 계층 간의 양극화 극심화된 상태로 사람끼리 위화감이 커지고, 어떤 형태의 전체주의의 통제방식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의 번영을 위하여 아주 개성 있는 개인과 개인끼리 서로 연합하여 ‘우리’가 되지 못한다면, 그런 전망은 빛 좋은 개살구고 허울 좋은 낭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조롱이 될 수도 있는 예언들이다. 서구인의 일상적인 화법은 ‘if∼ then······’이기에 표면적 발림 말에 현혹되면 그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핵심내용에서 벗어나기 쉽기에 조심해야 한다.

어떻든 우리의 역사상 우리의 선각자들은 우리의 미래를 아주 희망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중 작은 것들의 현상들로서 기토(己土)의 세상을 말한 일부 김항 선생의 말씀이 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하여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새록새록 떠오른다. 바이러스, 미세먼지, 세포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소음, 다양한 물질에 의한 빛의 산란, 환경오염 등을 작은 것들의 분야에 분류해 본다.

이런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을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잘 갈무리하면서 관련 산업을 조장하여 나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보다 밝아 질 것이다. 하여 저마다 자기의 세계를 옹골차고 아름답게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는 분명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벽두 저마다의 건승을 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