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불타오르는 맨발을 떠 올린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불타오르는 맨발을 떠 올린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13 15:5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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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불타오르는 맨발을 떠 올린다

바위 속으로 누군가가 떨어진 흔적
나는 울부짖는 맨발을 떠올린다
발자국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단단해지고 있다
날아가기 위하여 먼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어린 새였을까
날다가 지쳐서 잠시 지상에 내린
늙은 새였을까
움푹 들어간 발자국 안에 내 발을 넣어 본다
천천히 사막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풀밭 속에 감춰진 바위에
사랑의 파동이 남긴 흔적이 뻗어 있다
저 발자국은 날아가면서 남긴 것일까
지상에 안착하면서 남긴 것일까
백만 송이 구름의 몸이 찢어지고
펑펑 첫눈 내린 날에
쑥스러운 듯 열렸다가 닫히는 발자국 하나
나는 불타오르는 맨발을 떠 올린다

(박서영, ‘새의 발자국 화석’)

박서영 시인은 시 창작에 매우 의욕적이었으며 일찍 문단에 나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요절을 한 시인이다. 이 시는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라는 그녀의 처녀시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오래전에 세상의 빛을 보았지만, 그녀가 떠난 이듬해에 중간(重刊)되기도 했다.

어느 날 시인은 야외로 나왔다가 오래된 바위에서 새 발자국의 화석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중생대의 그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새가 발자국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우연히 갯벌을 지나갔고, 그 벌이 굳어 어느 날 바위로 발전하면서 새의 발자국도 함께 탄생하게 되는 경우와 혹은, 화산이 폭발할 때 흐르는 용암이 너무나 급속하게 흘러 들판에서 먹이를 쪼던 새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용암이 덮쳐 그 박혔다가 나중에 용암이 굳어지면서 화석으로 탄생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시인이 발견한 화석은 후자의 경우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용암의 데인 맨발 때문에 울부짖는 새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 괴로움으로 발자국은 점점 더 깊게 파이다가 마침내 단단해진 화석이 되었다는 상상력이다. 시상에는 어린 새였다면 그 어린 새의 아파함으로, 여행 중 우연히 배고픔으로 잠시 지상으로 내려 온 늙은 새였다면 늙은 새 대로의 고통이 매우 실감 나게 잘 상상되고 있어 새에 대한 시인의 감정이 잘 표현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새의 화석을 마치 그 옛날 지상에서 사랑을 나누던 새의 흔적을 상상하는데, 저 새의 발자국이 사랑을 나누고 다시 힘찬 비상을 하다가 남긴 것인지, 아니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지상으로 착륙할 때 남긴 것인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반부의 고통 때문에 만들어진 새의 화석을 애써 잊어버리기 위한 의식적인 작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역시 시인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상상하려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암으로 인해 만들어진 화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고 그 불타는 용암 속에서 죽어가는 고통으로 남긴 것으로 추측하는 새 발자국의 화석이 자꾸만 떠올라 아파하면서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비교적 큰 키에다 건강해 보인 시인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런 그녀는 요절했다, 시상에 등장했던 오래전 그 새도 그러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새도 뜻하지 못한 순간에 천명을 다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시인과 시작품이 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심란하다. 그러나 독자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상태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시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감성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픔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픔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성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기본적으로 깔려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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