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난센스
도민칼럼-난센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19 15: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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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난센스

20일 오늘,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다. 2019년 12월에 시작되어 19라는 명칭을 가진 이 바이러스에 21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우리는 허둥대고 있다. 우리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 전개되고 있지만 인류 역사를 두고 보면 스페인독감 아니 스페인에서만 유일하게 정보를 제공한 바이러스살상이 100여 년 전에도 있었으니 지난 역사를 돌이켜 오늘을 참고하면 좋겠다.

그때도 마스크 안 쓴 사람은 처벌을 받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19는 노년층과 기저질환자들에게 치명적이지만 스페인독감은 면역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의 사망률도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매년 연례행사처럼 우리는 독감을 앓고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겨울에는 더 빠른 속도로 번지는 또 다른 독감 코로나19도 이제 우리 생활에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끔찍하지만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최소 3년, 안전하려면 10년의 연구결과가 필요하다는 백신이 1년이 안되어 만들어졌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사람간의 접촉을 피하며 살 수도 없기에 나타난 불가피한 상황일 것이다. 백신을 빨리 확보하지 못했다고 연일 난리를 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부지런히 주고받는 카톡의 정보를 보자면 다른 나라는 백신을 다 확보하고 맞고 있는데 우리만 늦는다고 아우성이 대단했다. 그러더니 2월부터는 우리도 접종이 가능하다고 주사를 맞겠느냐 물으니 60%이상이 맞지 않겠단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지만 겉과 속이 너무 다르다. 카톡의 정보에 쉽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감정이 우선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의 이동을 강력하게 금지시켜서 이 바이러스를 잡자하고 한쪽에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양쪽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나또한 모두 다 막고 집안에서 한 달쯤 머무르게 하면 바이러스가 잡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지킬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만 그런다고 가능하겠는가? 아니 그러려면 그 무서워하는 공산주의 사실은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를 허용해야 하는데 견딜 수 있겠는가? 대면예배 자제하라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소송하고 일시에 바이러스를 전파시켜 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신천지사태의 수장인 이만희씨도 방역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선고하는데 이 바이러스를 행정능력만으로 막을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모든 관계는 촘촘히 엮여있다. 나 하나만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지만 나 자신이라도 잘해야 한다. 그러니 당분간은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싫겠지만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점점 지쳐가고 아파하고 있다. 이 험한 시기가 모두에게 다 나쁜 것만은 아닌지 어느 직종은 호황을 누린다는 말도 들린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은 이직이 빈번하지만 빚이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은 투전판에 끼어들 듯 모두 주식을 한다. 주가가 3000선을 넘기니 소득을 냈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종종 들린다. 비트코인도 급상승 중이고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라는데 그렇게 오르면 인심도 넉넉해지고 경기도 막 활성이 되어야 하는데 왜 죽는 소리만 더 들리는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로 모든 것이 조종되고 있다. 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면 그다음은 어찌되는가? 꽃이 떨어진다. 자본주의가 지금 가장 절정을 이르며 피고 있다. 있는 놈이 가장 많이 독식하고 이에 뒤질세라 앞 다퉈 달려가고 있다.

스페인독감이 제국주의를 무너뜨렸듯이 코로나19는 함께 살거나 혹은 함께 죽거나를 선택하게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첨병인 미국이 재난지원금을 상향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려 하고 있다. 이제 이념은 소용이 없다. 생존이 중요하다. 곳간에 숫자로 쌓아두는 사람과 그날그날 기본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으면 분노한다. 분노의 힘은 기쁨의 힘보다 세지만 상처를 남긴다. 그러니 원하는 것은 사회주의 방식이면서 지지는 자본적인 방식을 선호한다며 보수를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nonsens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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