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감나무가 있는 마을(2)
도민칼럼-감나무가 있는 마을(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21 15:4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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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감나무가 있는 마을(2)

요즘은 단감재배가 활성화가 되다 보니 옛날처럼 우린감은 시장에 사라지고 없다. 옛날에 고향마을은 감이 익어 갈 때쯤이면 홍시를 만들어 팔기 바쁘다. 우린감보다는 홍시를 만들어 팔면 훨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큰 항아리 밑에다 얇은 헝겊이나 종이로 카바이드를 싸서 놓고 감을 위에 채우면 2~3일 후에는 색깔도 곱고 물렁물렁한 먹음직스런 홍시가 된다.

당시에는 카바이드가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지 몰랐으며 그냥 홍시를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거로만 알았다. 서울에 올라갔을 때 포장마차나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이 밤에 불 밝힐 때 불을 밝히는 걸 봤었다. 대장간이나 철공소에서 쇠를 자를 때 그리고 쇠와 쇠를 붙여 이을 때도 용접용 가스불로 사용하는 걸 봤었다. 이처럼 공업용 화학물체인 걸 뒤 늦게 알게 된 것이다. 카바이드 가스를 사용해 만든 홍시가 몸에 해롭겠다. 이런 맘이 뒤 늦게 들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감은 너무 비싸 사지 못하고 대봉 품종인 홍시를 아내가 사왔다. 요즘도 카바이드가스를 이용해 홍시를 만들지 않을까 염려스런 맘은 감출 수 없어 걱정을 하며 먹었었다. 얼마 전에는 생감을 잔득 사오지 않은가? 요즘 단감은 너무 비싸니 대신 홍시를 먹으라는 아내의 속셈이었다.

아내가 사온 생감이 요즘 한꺼번에 홍시가 되니 날마다 억지춘향처럼 홍시를 먹어치우느라 아내와 함께 곤욕을 치르고 있다. 30년을 가까이 고향에서 살다가 타향살이 40년이 훨씬 넘다보니 집터와 논밭을 한 평도 남기지 않고 다 팔았다. 고향에 자주 갈 일도 없다. 어쩌다 친구의 부모님 댁을 갈 때는 마을 풍경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산자락 골짜기 밭에 그리고 마당과 텃밭이나, 동구 밖에 있던 감나무들이 잘려나가고 매실나무들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도회로 떠나고 나니 노인들만 사는 동네로 변해 있었다. 하늘높이 치솟은 높은 감나무에 올라가 감 따기가 위험하며, 일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든다는 것이다. 푸른 숲을 이루던 수많은 아름드리 감나무들을 베어내고 매실나무를 심어 버렸다. 동네 앞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던 밭들과 텃밭과 밭 언덕배기에 자리 잡았던 오랜 세월을 묵은 감나무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매화나무숲으로 바뀌었다. 마을에는 이제는 봄이 되면 매화꽃 피는 마을이 되었다.

고향에 갈 때마다 나는 아쉬움이 많다. 여름에는 동네 앞으로 대마(大麻)밭이 숲을 이루고 가을에는 무와 배추가 자라던 마을에 감나무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마을이었다. 단풍이 발갛게 물든 잎 사이로 빨간 감들이 달린 고향마을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는 동네 앞으론 기찻길과 강물이 흘렀다. 황금 들판 뒤로는 신작로가 있어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가는 풍경을 뒷산에서 내려다보면 유명한 화가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참 아름다웠다.

그때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감나무사이로 보였었다. 앞쪽도 산 뒤쪽도 산이요. 양옆에도 산으로 병풍처럼 바람막이해주면 잘 익은 감이 발갛게 달려있고 마당엔 빨간 고추가 덕석에 널려 있었다. 마을 앞으로 검 하얀 연기를 품으며 검은 기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풍경은 천하절경이었다.

얼마 전 고향에 갔을 때다. 지금은 이장을 맡은 선배 형님에게 나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형님 동네가 너무 변해 버렸습니다. 옛날 아름다웠던 감이 익어가는 마을, 그 때 우리 동네가 그립습니다” 라고 했더니 “자네 말도 맞네. 그렇지만 새봄에 한 번 와보소. 우리 동네가 온통 매화 꽃 향기 속에 파묻힌 꽃동네가 되었네. 감나무로 덮여 있을 때보다 훨씬 아름답다네”라고 선배형님이 말했다.

선배형님 얘기를 듣고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물론 감꽃도 피지만 잎사귀에 가려져 꽃이 보이지 않는다. 매화 꽃향기와 하얀 꽃으로 덮여 있는 꽃동네를 상상해본다. 내년에 꽃피는 새봄이 오고 극성이던 코로나19란 놈이 꼬리를 감추고 잠잠해지면 나고 자라던 나의 고향을 다녀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고향마을을 병풍처럼 안아 감은 산들이 언젠가부터 아름드리나무숲이 우거져 버렸다. 봄이 오면 온 산에 진달래가 피었다가 지고 나면 철쭉꽃이 붉게 물드는 모습과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옛날 풍경은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옛날, 감이 익어가는 고향마을이 그리워 내가 살던 고향의 봄노래 가사를 바꿔 불러 보았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감나무 꽃 매화꽃, 아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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