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죽음의 의미와 종류(28)
칼럼-죽음의 의미와 종류(28)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08 14:5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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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죽음의 의미와 종류(28)

영국 종교학자 크리스토퍼 M 베이치의 <윤회의 본질>에 의하면, ‘사람은 저쪽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올 때 대략적인 삶의 청사진을 가지고 온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우리의 의식은 저쪽에서의 기억을 잊어 가는데 말을 할 때쯤이면 완전히 잊는다. 그러나 무의식의 영역에서의 핵심 자아, 즉 대령(大靈)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생에서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도 이미 윤곽을 정하고 왔기 때문에 예정된 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하게 된다. 처음 보는 것인데도 언젠가 본 듯한 ‘데자뷔(d󰐋·j󰐃 vu:旣視感·일종의 착각)’를 전생의 기억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꼭 전생이 아니더라도 영계(靈界)에서 결정했던 청사진의 장면으로 보기도 한다’고 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의 책 <파워 오브 러브>에 소개된 사례이다. 뉴욕의 한 내과 의사에게 네 살짜리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두 아들을 보니 둘이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아버지로서는 무슨 얘기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두 아이가 아무렇게나 지어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련되고 정교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쌍둥이 아들을 고대 언어를 전공하는 교수에게 데리고 가서 서로 얘기를 하게 했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유심히 들은 교수는 아이들의 말이 시리아 일부 오지에서 사용하는 고대 언어인 아람어라고 했다.

이처럼 배운 적 없는 외국어를 하는 현상을 제노글로시(Xenoglossy)라고 한다. 쌍둥이 아들의 경우는 자발적인 전생 기억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전생에 다른 삶이 있었고 그에 따른 기억을 떠 올린 것이 아니라면 이런 현상을 설명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결국 이는 전생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에 반해 직선적 시간관을 갖고 있었던 문화권(기독교·유대교·이슬람)에서는 대개 ‘부활’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한편 중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에서는 죽은 자의 ‘혼백(魂魄)’은 산 자의 정신과 신체처럼 사후세계에서도 생활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죽은 자도 산 자와 똑같이 의(衣)·식(食)·주(住)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사회적 지위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장례 의례도 망자의 성(性), 연령,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다음에 열거하는 내용은 환생(幻生)과 윤회(輪廻)에 대한 분석결과이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존재가 소멸해 버려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반론 근거 중 하나가 환생론이다. 흔히들 환생론은 불교나 힌두교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윤회는 거의 모든 주요 종교들의 주춧돌이다. 불교, 힌두교, 도교 등 아시아 종교들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토착 종교들도 윤회를 믿는다.

기원 전 1300년경 작성된 이집트의 ‘사자(死者)의 서(書)’에는 심장과 깃털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그림이 있다. ‘양심’을 상징하는 죽은 자의 심장과 ‘정의’의 여신 ‘마아트(Maat)’를 상징하는 깃털을 올려놓은 저울이 평형을 이뤄야 내세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다. 진실한 삶의 무게가 사후를 결정짓는다는 의미다. 기독교의 성경에도 원래는 환생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어머니 헬레나와 함께 환생에 관한 구절들을 모조리 삭제해버렸다. 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종교로 선언한 최초의 황제였다. 553년에는 제2차 콘스탄티노플리스 공의회에서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환생론은 ‘악마의 재림’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로써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제도화된 교회는 환생론을 이단시하고 환생론자들을 처형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중세 암흑기의 퇴조와 함께 교황권이 붕괴되고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진보적인 지성들에 의해 환생론은 다시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81년 미국 갤럽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개신교도의 21%, 가톨릭교도의 25%가 교단의 입장과 무관하게 윤회론을 믿는다고 했다. 한국인은 28%정도가 윤회를 믿는다는 통계도 있다. 어떤 행로를 걸어왔건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28회에 걸쳐 소개한 죽음의 의미가 애독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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