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화려함과 웅장함, 나의 별스런 미학주의
아침을 열며-화려함과 웅장함, 나의 별스런 미학주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14 14:09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화려함과 웅장함, 나의 별스런 미학주의

나는 철학자로서 ‘국가’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는 철학적 전통이기도 하다. 할 말이 태산 같다. 그중 지금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특별히 강조해 왔던 것이 국가의 네 초석인 칼-돈-손-붓(군사력-경제력-기술력-문화력) 그리고 네 기둥인 합리성-도덕성-심미성-철저성이다. 아마 누구든 별 이의 없이 수긍해주겠지만 여기에 심미성이 등장하는 데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나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 여기엔 나의 개인적 체험도 좀 작용한다.

살아오면서 어쩌다 보니 외국생활을 제법 하게 되었다. 일본에 10년, 독일에 2년, 미국에 1년, 중국에 1년, 총 14년이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이 나라들은 여러 지표에서 어쨌든 우리나라보다 상위에 랭크되는 선진국 혹은 강대국이다. 그 객관적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이 나라들로부터 많은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벤치마킹이라고 해도 좋다. 심미성 내지 미학성도 그런 점에서 내 관심을 사로잡은 주제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 나라들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물론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해야 한다. 그러나 문화적 환경은 사정이 다르다. 그건 사람이, 즉 국가와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과의 비교미학은 의미가 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또래 세대(50년대 생, 70년대 학번)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애국가의 한 구절이 상징하는 그런 가치론 속에서 성장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국가적-민족적-문화적-미학적 자부심 내지 자존심은 위의 여러 나라들에서 주민으로 살면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특히 우리와 특수한 관계인 일본에 대해서는 무수한 세계인들이 그 미학성에 대해 우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나로서는 솔직히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최소한 일본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나의 별난 가치 기준은 그런 체험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 이웃 중국에서 1년을 살았다. 내가 느낀 결정적인 차이는 사회주의-자본주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학적인 ‘다름’이었다. 그 기준이 너무 달랐다. ‘미적인 것’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향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그 바탕에는 경제적 풍요가 있다. 그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오랜 전통을 갖는다. 무엇보다 아득한 1000년 전의 수도였던 서안(옛 장안)이나 낙양 같은 데 가보면 그런 미적 지향은 한순간에 증명이 된다. 서울의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중국 드라마나 틱톡 같은 데서는 더 간단히 확인된다. 거기엔 중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그런 미적 가치들이 눈에 띈다. 그 중의 하나, ‘화려함’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웅장함’이라는 게 있다. 정말 대단하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것이 못내 부러웠다. 열심히 내 기억 속을 헤집어보았으나 우리나라에는 딱히 화려하고 웅장한 게 없다. 표현은 조심스럽지만 여러 가지가 참 초라하다. 소박이니 담백이니 단아니 하는 가치들도 물론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그런 건 중국에도 없지 않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우리의 이런 현상에는 어쩌면 중국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권 속에서 저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사정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최고 권력자를 황상이나 폐하라 부르지 못하고 ‘전하’라 격하했던 것도 (자칭도 ‘짐’이 아닌 ‘과인’이었던 것도) 필시 그런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황제의 나라가 아닌 왕의 나라였기에 ‘화려함’과 ‘웅장함’은 어쩌면 중국에 대한 불경이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자.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외교관계... 어쩌고 하는 말로 우리는 스스로를 달래 며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중국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고 더 웅장한 건축물을 세운다고 중국이 뭐라고 할 입장이 못 된다. 중국 스스로가 우리를 ‘선진국’(发达国家)으로 평가한다.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화려하고 웅장한 미학을 구축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건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특히 건축이 그렇다. 서울은 엄청나게 발달한 세계 유수의 대도시이지만, (삼성 본사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미학적 건축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너무나 소박하다. 북경 상해는 말할 것도 없고 광주 심천 무한 항주 등의 지방 도시들도 그 화려함과 웅장함은 이미 서울을 한참 능가한다. 나의 제언이었던 ‘질적인 고급국가’를 위해, ‘최소한 중국보다는 더 나은’이라는 기준을 나는 하나 더 제시한다. 지금 그런 화려하고 웅장한 것들을 만들면 그게 소위 관광자원이 되기도 할 것이며 세월이 흐르면 그게 문화유산으로 남기도 할 것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그런 것이 우리의 후손을 먹여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서울 강남에 105층 사옥을 지으려다 50층으로 축소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몇 마디 적어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