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주인공(主人公)의 삶이란?
도민칼럼-주인공(主人公)의 삶이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16 16: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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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주인공(主人公)의 삶이란?

설 특집으로 KBS 다큐인사이트에서 실감 파노라마 한반도 자연유산 2부작의 1화인 ‘백두대간 꽃자리’가 방영되었다.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리를 지키는 꽃과 생명체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보통 할미꽃은 고개를 숙인다는데 동강할미꽃은 벼랑에서 자라다보니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하여 고개를 들고 씨앗을 날린다는 이야기, 오로지 이슬만 먹고도 신기한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혼인 비행, 물을 거슬러 오르는 열목어들의 힘찬 몸짓, 산란을 맞은 어름치가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으로 연신 돌을 물어 날라서 만드는 집을 보고 있자니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감격이 몰려온다.

사라진 빛과 소리를 보여주는 자연다큐멘터리는 어느 드라마보다도 사람을 감동시킨다. 인간도 자연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리산자락에 사는 즐거움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소리와 빛의 소통이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기계를 통해 오래 들으면 피곤해진다. 봄이 오려는 찰라, 개구리들이 깨어나며 우는 소리는 어떤가? 합창으로 제 어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지 아니면 이제 제 살길 찾아가겠다고 조잘거리는지 모를 소리들에 웃음이 난다. 여기 맛있는 곶감이 아직 이 집 처마에는 있다고 제 짝을 부르는 물까치 소리도 정겹다. 바람 부는 날, 눈을 감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시골이기에 가능하다. 도시의 바람은 무섭지만 시골의 바람은 겸손을 가르친다.

빛은 어떤가? 휘황찬란(輝煌燦爛), 밤을 낮처럼 밝히는 불빛들, 시골읍내도 그 빛이 부러운지 조그만 알전구로 거리를 꾸미지만 여름날, 모깃불 놓고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보면 희뿌옇게 별빛 사이로 흐르던 구름들, 그것이 은하수라고 저기, 견우와 직녀가 있다고 이야기해주던 할머니의 목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빛의 이야기가 있을까! 별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 우리가 사라져도 있겠지만 별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갔을까? 밤에도 빛을 끌어다 쓰고 암막 커튼을 쳐야 잠이 드는 사람들, 은하수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이들,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설악산의 산양들,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있어 귀한 어름치, 멸종위기에 놓인 담비의 발랄한 발걸음, 눈을 머리에 이고도 꽃을 피워내는 선괭이풀, 모데미풀, 한계령풀, ‘꽃 따로, 사람 따로, 산 따로 인줄 알았는데 같이 가더라고요’ 라는 말은 무릎을 치게 한다. 우리는 이렇게 다함께 살면서 각자 자기 자리의 주인이다. 혹한에 움직이지 않고 뜨거운 날을 피하지 않고 기다려서 카메라에 담아준 분들께 고맙다. 그분들도 자기 자리에서 주인이 되어 기록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리 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에 얼마나 주인공으로 사는가? 늘 엿보고 부러워하고 시샘하고 그러다 화가 나고 나 이외 다른 이들은 모두 행복한 것 같아 절망스럽고 그러지는 않았는지?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이 타인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닌데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화가 나고 그러다 좌절하지는 않았는지? 내 삶의 주인이 나라면 개구리 삶의 주인은 개구리이고 모데미풀 삶의 주인은 모데미풀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늦지 않게 내 삶의 주인 자리를 찾으라고 오늘도 나는 지리산자락에서 월급여가 아닌 연봉240만원의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을 하고 있다. 나보다 더 적은 강의교통후원금만으로 하루를 몽땅 헌신하는 교사님들과 그마저도 받지 않고 학교 운영을 돕는 운영위원들도 계시니 내가 우리 학교에서는 고액연봉자이다. 작년에 처음 경남문화예술재단에서 마을축제 후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순수하게 우리들의 후원등록금으로 학교를 꾸려나간 지 13년째, 인터넷 다음카페에 있는 카페 대문에는 ‘지금, 바로, 여기 당신이 이 학교의 주인공입니다’ 라는 글을 고친 적 없이 해오고 있다. 지난 해, 코로나에도 조심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3월부터 다시 시작이다. 눈발을 헤치고 나온 야생화처럼 우리도 기지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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