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17 13:5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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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 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김행숙, ‘다정함의 세계’)

나는 이 시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면서 정말 잘 쓴 시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시가 그러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의미를 이렇게 은유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 시는 읽어보면 전체적인 형체를 눈으로 확인하기보다는 마음으로 그려진다.

첫 번째 연에서 아득해진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부드럽고 포근한 곳일 것 같다. 그리고 서정적 자아는 그곳에 누워있는 것 같다. 나른해지는 봄날 그곳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스르륵 눈이 감긴다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여기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단다.

여기는 큰소리로 삶에 찌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 그리고 희미한 목소리로도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평화스러운 곳, 그래서 모두의 목소리가 작아져서 곁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희미해지는 세상이다.

작은 호의에도 고맙다고 말하는 말, 그리고 <고마워요>의 첫 음에서 만들어지는 그 예쁘고 둥근 입술 모양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작별할 할 때 <안녕>이라고 나오는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전혀 기심(機心)이 없고 투명한 말씨가 나오는 세상이다.

이 시에서 가장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네 번째 연이다. 뜬금없이, //수평선처럼 누워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라고 한다. 전형적인 상징성이 숨어있는 곳이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그림이라고 봤을 때, 이 부분은 수직적인 이미지이다. 시가 전반적으로 누워있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녹는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희미해진다. 등등

이렇게 민민한 분위기에서 돌출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전반적인 잔잔한 분위기에서 중심축이 될 만한 용솟음, 그러니까 동양 사상으로 설명하자면 음양 사상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돌출된 부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건은 돌출이라고 하면 거친 이미지를 떠올리고 싶다. 그런데 이 시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이 요구된다. 그래서 잔잔한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처럼 매끈한 이미지를 불러온 것이다. 그래서 전혀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축이 될 돌출은 돌고래의 등장이 가장 적합하다.

그러므로 앞서 말했듯 이 시에서는 녹는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희미해진다. 등등, 부분적인 메타포가 많이 등장하지만, ‘수평선의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 오른다는’ 시어는 시 전체적인 시어로 만들어가는 상징어이다. 그러니까, 은유를 더욱 큰 은유로 만든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전체적인 부드러움이나 다정함을 연결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상징어라고 하면 될지 모르겠다. 어렵지만, 이렇게 설명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결론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다섯 번째 연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렇게 평화스럽고 다정한 세계를 향해 양팔을 벌려 환영하며 그 세계를 맞이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정말 정감이 가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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