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겨자씨 이야기
칼럼-겨자씨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22 16:4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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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겨자씨 이야기

한 여자가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 하며 아들의 시신을 꼭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아들의 의식을 되돌릴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기적의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는 부처를 찾아갔다. 부처는 해독제를 일러주었다. 아랫마을을 뒤져서 겨자씨를 몇 알 구해오라고 했다. 그 겨자씨야말로 아들의 병(죽음)을 고쳐줄 수 있는 해독제라고 했다. 다만 겨자씨는 단 한 번도 죽음을 겪지 않은 집안에서 얻어 와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자매도 심지어 하인이나 동물조차도 죽은 적이 없는 집안이어야 했다. 집집마다 샅샅이 뒤지고 다닌 끝에 여자는 단 한 번도 죽음을 겪어보지 못한 집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 겨자씨는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죽음은 모든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그 불가피성을 부여 받았을 때 슬퍼할 이유도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여인은 죽음이 단지 이번 생애의 마지막 사건이라는 것을 몰랐다. 거짓 희망과 불필요한 슬픔의 번민에서 모두 벗어나자 그녀는 평온한 마음으로 곧바로 화장터로 가서 아들을 화장했다. 모든 존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이상은 유한한 세상을 사는 모든 존재는 덧없고 예측불가능하며 공허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욕망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자’는 어떤 일에도 욕망이 없어 즐거움을 주는 일에 집착하지도 않고 고통을 주는 일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없어 희망과 근심, 야망과 좌절의 구속에 굴복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아직 익지도 않는 과일을 따겠다고 나무를 흔들어대지 않고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다. 선각자의 시 한수를 소개한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다. 때를 기다린다. 임금을 기다리는 하인처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다. 때를 기다린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날카로운 지혜로. 오랜 세월 불교의 선지자들은 이와 같은 무욕(無慾)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명상을 통해 정신적, 신체적 고행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승려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명상법은 ‘죽음의 회상’이다. 승려들은 묘지나 화장터에 혼자 앉아 아직도 다양한 상태로 쇠해가며 그곳에 누워 있을 시신, 그리고 한때 몸을 구성하고 있었을 유골의 재(災)를 명상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이와 같은 거짓 실체를 깊이 생각하며 명상하다 보면 삶의 덧없음, 불확실함, 불연속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깊이 깨닫게 된다. 가끔은 생명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곧 시신이 될 자신의 몸도 깊이 생각해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즉 나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매 순간의 탄생과 죽음의 혼합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것은 재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완벽한 자유를 얻게 되어 평정과 평온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서구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다고 알려진 책이 있는데 바로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산 사람들에게 ‘잘 죽는 법’을 일러준다. 책 속의 스승은 제자에게 죽음과 대면할 때에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 상태를 유지하며 온갖 형태의 방심과 혼란을 이겨내고 맑고 침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극락도 지옥도 신도 악마도 탄생도 죽음도 모두 자신이 왜곡된 마음을 투영하는 환상이며 덧없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불필요한 집착에서 벗어나 근심걱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삶에는 삶 외에 다른 게 없고 죽음에는 죽음 외에 다른 게 없으므로 우리는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 일을 반복하는 중이다. 태어난 지 2주 된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고 휴대전화로 학대 증거를 없애는 방법을 검색하는 등 범행 은폐를 시도한 부부, 열 살짜리 조카딸을 물고문하고 폭행하여 숨지게 한 30대 이모 부부의 끔찍한 살인행각을 보노라니 이들이 과연 사람인가? 충격이 너무도 크다. 인생사 제행무상(諸行無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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