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새봄을 맞이하며
진주성-새봄을 맞이하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02 13: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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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새봄을 맞이하며

칼바람이 기를 죽이고 살랑거리며 두꺼운 외투를 벗기더니 매화꽃 향기가 잠든 가슴을 깨운다. 오는 듯 마는 듯 내리다 그친 봄비에 젖은 산야가 기지개를 켜며 품어내는 향긋한 흙냄새가 오지랖을 스며든다. 희뿌연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살갑게 다가오기에 찻잔의 온기도 아침 식탁 위의 내려놓고 바깥바람을 마주했다.

유리문을 내린 채 산모롱이를 돌아 들녘을 가르며 내달려도 그토록 매섭게 알싸하던 날 선 바람이 3월과 눈이 맞아 야릇하게 부드러워졌다. 다리 아래의 강물도 검푸른 빛을 지우고 새파랗게 맑아졌다. 강둑 양지에서 새 쑥의 도란거리는 소리에 귀가 가렵고 마을 어귀의 양지쪽 텃밭에는 새싹이 돋느라고 겨드랑이가 스멀거린다. 새봄 내음에 이끌려 봄바람을 타고 옥천사의 작은 주차장에 닿았다. 사철 변함없이 푸르기만 한 낙락장송의 빛깔도 엊그제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하늘 높은 가지마다 진청색의 무거움이 사라지고 진녹색으로 가벼워져서 활기가 넘치고 노송의 가지 끝마다 생기가 팔팔하다. 문 닫힌 경로당 앞에서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내일보다 오늘이 더 젊다. 일러주고 물려줄 것을 서둘려야 한다. 얼음장 밑에서 침묵하던 계곡물도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할 말은 때맞추어 소리 나게 하란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또랑또랑하게 소리를 내란다.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날며 꼬리 끝을 쫑긋거리는 작은 산새도 바빠졌다.

병아리들이 줄지어 교문을 들어서는 3월이다. 귀여워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짜릿짜릿하다. 일주문 앞에서 또 머뭇거린다. 법계와 속계의 가름이다. 돌아서야 할 사람은 아닐까하고 망서러지는 곳이다. 3월이다. 용기를 내야 한다. 천왕문을 디밀고 들어갈 요량이다. 봄기운을 받아 밀어붙여 보자. 3월, 새내기들의 첫 출발이다. 뭐든지 도전하라. 모든 것을 응원한다. 무모함도 아니고 만용도 아니다. 젊기 때문이다. 사대천왕이 눈을 감아준다.

나한전과 산령각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큼지막한 바위의 실낱같이 금이 간 틈새에서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십여 년을 자랐건만 가래떡 굵기가 될까 말까하여 오늘도 발길을 멈춘다. 금수저가 아니면 흙수저라도 물고 나지, 어쩌자고 바위틈에 나서 발이 묶였을까. 십여 년이면 서까래 굵기는 되고도 남을 것을 당초에 옮겨주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며 미안해한다. 가지마다 옹골차게 씨를 맺고 있어 더 안쓰럽다. 씨앗이라도 살 좋은 땅에 심어주려 했는데 이마저도 해마다 시기를 놓친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만은 미안해져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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