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봄을 기다리는 마음
세상사는 이야기-봄을 기다리는 마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04 15:0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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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봄을 기다리는 마음

외출 길 바람결엔 아직 매운 기운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바싹 날이 섰던 추위는 한결 무뎌졌고, 봄기운이 언뜻언뜻 묻어난다. 계절은 윤회를 거듭하며 어린 생명의 봄을 우리 곁으로 떼밀고 있다. 휴일에는 온종일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으로 먼지를 풀썩이던 땅덩이는 부드러운 빗발에 몸을 내맡긴 채 지난겨울의 긴장을 풀어내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집 앞 얕은 안산에 올랐다. 한결 차림새가 가벼워진 이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며 기지개를 켠다.

지난겨울 내내 앙상한 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던 매화가 경쟁이라도 하듯 활짝 피어나 습습한 바람결에 향기를 싣는다. 젖은 땅 위로 떨어지는 순백의 꽃떨기엔 벌써 찬란한 봄기운이 어른거린다. 목련은 가지 끝 움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생강나무도 꽃순들을 앙팡지게 모아 벽력처럼 터뜨릴 개화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순이 돋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일 나무가 지난겨울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이 봄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에서 새로 나온 가지는 인내와 희망의 상징이다.

어디 봄은 꽃으로만 오는가. 활엽수들은 무채색 가지의 껍질 안으로 연둣빛 생명의 기운을 잔뜩 빨아들이며 앙증맞은 잎사귀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머잖아 느티나무의 부드러운 잎들이 옅은 초록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도심의 가로를 장식한 은행나무 이팝나무들도 하늘을 향해 새잎을 뻗어 올릴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 봄은 저만치 와 있다. 하지만 우리들 가슴속의 봄은 멀기 만하다. 얼어붙은 가슴속에선 봄의 조짐조차 찾을 길이 없다. 코로나19 인하여 경제위기가 파도처럼 덮쳐오고 거대 여당의 독주로 정치는 실종하고 단절된 남북관계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불황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우리의 일상을 압박하고, 과거로 뒷걸음질 친 세상은 불안하게 잦아드는 우리의 목소리를 짓누른다. 가장들은 실직의 두려움에 떨고 주부들은 한 끼의 끼니를 걱정한다. 본격적 고통이 시작될 것이라는 불길한 소식이 꼬리를 문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어느 땐가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를 정도로 국가의 운영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지 이미 오래이다. ‘헬조선’이란 말은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거북한데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의식이 깊이 자리한 듯하다. 경제위기 속에서 누구보다 고통을 받을 서민들의 이익을 최우선해야 사회통합과 경제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정말 모르는 것인가. 부자들의 배를 더욱 불리고 대기업의 규제를 더욱 옥죄는 것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니 답답하기만 한 노릇이다. 그것은 힘없는 서민들과 중소기업의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임을 모르는가. 고삐 풀린 공권력과 일방적 속도전이 국민의 자유와 생존권을 도발하고, 우리의 봄을 옥죄고 있다. 이렇듯 나라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나라에 사는 국민들에게 무슨 기쁨과 흥취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신이라면 신에게 빌어보고 싶다. 봄을 맞아 나라에 은택을 내리고, 아울러 국민들에게 깊은 흥취를 전해달라고.

그렇다고 우리의 봄을 위해서도 희망을 버려서도 안 된다. 자연의 봄이 거친 겨울을 넘고 찾아들 듯이 얼어붙은 우리의 가슴과 칡처럼 얽힌 갈등을 풀어낼 마음속에 봄을 준비해야 한다. 불통에서 소통으로 불신에서 믿음으로, 이 혹독한 야만의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지켜내는 것이고 이웃과 공동체를 온전히 보존해 내는 길이다.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생명 빛 넘치는 봄을 그려보라. 길거리 가로수에서, 도심 학교의 작은 숲에서, 혹은 아파트의 베란다에서의 화분에서 만날 풋풋한 봄기운이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들 날을.

어지러운 세상을 핑계 삼아 우리의 봄을 유폐시킬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겨울이 아무리 깊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찾아오는 봄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는 시구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이번에는 언론이나 사람들의 입에 제발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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