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의자와 엉덩이
아침을 열며-의자와 엉덩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07 13: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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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의자와 엉덩이

학교에서 보직을 맡아 일을 하다가 보니 최근 총장님들이 모인 어떤 행사에 잠깐 배석을 하게 되었다. 소위 ‘장관급’ 인사들 십여 명이 한꺼번에 모인 자리인지라 현관에는 기사 딸린 검은 색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회의장은 특유의 무게감으로 빛이 났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거물급 인사들의 바로 곁에 선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런데 나이 탓일까? 젊었을 때와는 달리 긴장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 30대 초반의 유학생 시절, 도쿄의 어떤 행사에서 일본 중의원 의장[국회의장]의 통역을 맡았을 때, 진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했던 장면이 비교되었다. 행사 후 다과회 때 그 노정객이 “자네도 수고했으니 많이 드시게” 하며 음식을 권했는데, 나는 그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했었다. 그런 긴장이 이제 사라진 건 아마 그 기라성같은 총장님들이 다 나보다 연배가 낮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게 세월이었다.

종류는 좀 다르지만, 예전에 읽은 헤리 골든의 수필집 <생활의 예지>에서 ‘나이 들었다는 것을 느끼는 최초의 순간은 길거리의 경찰들이 갑자기 어리게 보일 때’라고 했던 게 생각나기도 했다. 내가 퇴장한 후 총장님들은 아마 작금의 심각한 대학 현안들을 진지하게 논의했을 것이다. 그것은 곧 국가의 현안이기도 했다.

나의 집무실로 돌아와 나는 그 회의장에 즐비했던 ‘의자’들을 생각했다. 수년 전 나는 어떤 책에서 철학적인 ‘의자론’을 전개한 바가 있다. 의자는 곧 자리고 자리는 곧 역할수행의 장이고 삶의 질이 결정되는 장이라는 일종의 토폴로지(장소론)다. 나이 들어가면서, 경험이 많아지면서, 나는 ‘자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가 시리도록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지위’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삶이라는 것을 살아가는 이 사회 이 나라 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자리들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그 자리(의자)에 앉아 그 자리에 맡겨진 일들을 수행한다. 그 수행이 그 조직 그 기관 그 사회 그 나라 그리고 이 세상을 실질적으로 움직여나가는 동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잘 모르고 있다. 똑같은 자리 똑같은 의자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 어떤 엉덩이가, 즉 누가 앉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내 삶의 과정에서 직접 몸서리칠 정도로 아프게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정말이지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앉아 완전히 일을 망쳐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을....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아마 각자의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그토록 많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굳이 많은 예도 필요 없을 것이다. 대한제국의 총리대신 자리에 앉아 있던 이완용이라는 엉덩이도 그중 하나다. 총리대신이라면 얼마나 막중한 자리인가. 그 엉덩이가 나라의 발전을 위한 역할은커녕 완전히 나라를 말아먹은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에도 그런 엉터리 엉덩이들이 싸질러놓은 오물들로 더럽혀진 의자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제대로 된 엉덩이가 그 자리에 앉아 그 의자를 황금의자보다 더욱 빛나게 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기업에도 많고 공직에도 많다. 그런 엉덩이들이 우리가 아는 한국의 이 눈부신 발전을 견인해온 것이다. 그게 한국이라는 이 나라의 불가사의다. 전체적으로 보면 온 나라가 엉망진창 문제투성인데, 그런 가운데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제 몫을 해내는 황금 엉덩이들도 또한 적지 않은 것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초일류 급들이다.

그래서 인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참으로 진리다. 인사란 자리에 사람을 앉히는 일이다. ‘어떤 엉덩이를 어떤 자리에 앉히느냐’ 그게 요체다. 기업이라면 그게 곧 회사의 이익과 직결이 되고 나라라면 그게 곧 국민의 삶과 직결이 된다.

바야흐로 새봄, 인사의 계절이다. 수많은 의자들이 새로운 엉덩이를 기다리고 있다. 한번 잘못된 엉덩이를 그 자리에 앉히면 그 잘못된 결과를 되돌리는 건 너무 힘들다. 신중하고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만난 그 총장님들은 아마 제대로 자기 자리를 찾아 앉은 훌륭한 분들일 거라 믿고 싶다. 그분들이 작금에 우리가 처한 이 대학의 위기를 지혜롭게 잘 극복해나가 주리라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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