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위대한 정치 VS 치졸한 정치
아침을 열며-위대한 정치 VS 치졸한 정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08 16:4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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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위대한 정치 VS 치졸한 정치


“선생님 큰일 났어요. 우리 아이가 구두약을 먹었어요. 괜찮을까요?” 물론 아직까지는 가상의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대화가 일상화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른바 최근 핫하게 떠오르는 컬래브레이션(collaboration) 먹거리의 추세 때문이다. 상상력을 조합하여 재미로 만든 먹거리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어린 아이들이 구두약통 모양으로 만든 초콜릿과자를 자주 먹다가 진짜로 구두약을 먹는 경우라든지, 딱풀캔디를 자주 먹다가 진짜로 딱풀을 먹는다든지, 농약병 모양 속에 든 음료수를 마시기를 즐기다가 진짜로 농약을 마신다든지 하는 일이 생길 것을 상상하여 해 본 소리다. 어떻든 이런 상품이 불티나듯 팔리고 있는 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비틀어 재미삼아 즐기려는 세상인심의 반영이 아닌가 한다.

우려되는 바는 이런 재미 때문에 착각현상이 빈번히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이런 세태가 계속되어 일상적인 것이 되면 네모는 네모가 아닌 동그라미가 되고, 세모는 세모가 아닌 마름모꼴이 되며, 빨간색은 파란색을 지칭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杞憂)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이른바 드러난 이름과 속의 실제가 서로 다르거나 뒤바꿔지는 전도(轉倒)와 혼돈(混沌)의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격다짐으로 강요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세상으로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에서다. 민주와 진보와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떼거리 집단의 잇속을 챙기는 아귀다툼을 세상살이의 본모습이자 정치의 실태라고 강변하는 살벌한 풍조로 굳어질까 두려울 따름이다.

이런 혼란을 간파하여 시대를 바로잡고자 애처로이 몸부림쳤던,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조차 세상 물정 모르는 백치(白癡)라고 조롱을 당하였던 외톨백이가 있었다.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였다. 그래도 공자님은 고리타분하게 ‘정명(正名)’을 외쳤다. 자로가 여쭈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논어 13 자로03). 이른바 정명사상의 선언이다.

정치란 본래 그러한 것인지 복잡 미묘한 암투(暗鬪)를 전제한다. 그리하여 옛 선비들은 정겨운 이들과 차를 마실 땐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서로 약속하고 찻잔을 나누었던가? 정직이 가장 최선의 정책(Honesty is best policy)이라는 말도 있는가?

위대한 정치는 평이하고 쉽다. 누구나 이해하고 따른다.
치졸한 정치는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니 아무나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따르지 못한다.
위대한 정치는 권력자의 역린을 건드려도 아무런 탈이 없다.
치졸한 정치는 권력자의 심기만 스쳐도 쥐도 새도 모르게 갈기갈기 찢겨죽는다.
위대한 정치는 누구나 편안하며 누구나 풍요롭고 누구나 웃는다.
치졸한 정치는 권력자 자신도 불안하니 세상에 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위대한 정치는 누구나 믿으며 누구나 천진난만하다.
치졸한 정치는 누구도 믿지 못하며 모든 이들을 서로서로 경계한다.


치졸한 정치는 증오와 분노, 이간질과 편 가르기를 정치의 자양분으로 삼지만 위대한 정치는 관용과 사랑, 조화와 통합을 정치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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